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역시 보수의 헤게모니는 반공보수가 잡고 있는 모양이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접고, 그 전도사 김종인을 버리고 반공보수의 품에 안겼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이 대통령이 촛불항쟁에 떠밀려 그런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박 후보는 반공보수의 서슬 퍼런 공세에 눌려 그간 벌여온 ‘중도 쇼’마저 머쓱하게 끝내야 했다.
사실 경제민주화에 대해 시장보수들이 줄기차게 시비를 걸고 무력화를 시도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 후보가 신봉하는 박정희 모델에서 시장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점이 반영된 결과였다. 시장보수의 시도에 그렇게 버티던 박 후보가 북방한계선(NLL)을 앞세운 반공보수의 공세에는 맥없이 무너졌다.
북방한계선 문제를 쟁점화한 것은 김종인 위원장 때문에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시장주의자 이한구 대표다. 둘 사이의 싸움에서 진 것으로 보이던 이 대표가 전가의 보도인 반공(반북) 이슈를 회심의 승부수로 던져 승패를 뒤집었다. 아직 시장보수는 반공보수의 하위 파트너다. 예컨대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이 새로운 시장으로 등장했지만 시장보수는 반공보수의 눈치를 보느라 북한 시장에 미온적이었다. 이들의 연합공세를 박 후보가 버텨내기엔 애당초 경제민주화에 대한 소신이 부족했다.
이제 박 후보는 그간 공언해왔던 숱한 약속들을 ‘무리 없이’ 뒤집어야 한다. 즉 요즘 용어로 ‘먹튀’ 해야 한다. 이미 후보 사퇴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환수하는 법과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법을 맞바꾸자 하고선 먹고 튀어 버렸다. 문재인 후보가 보조금 환수법을 전격 수용하자 말을 바꿔 투표시간 연장법은 못 받겠다며 버티고 있다. 제19대 국회의 개원 협상에서 쟁점이 되었던 문화방송(MBC) 사태 해결과 관련해서도 안면몰수다. 이상돈 교수를 메신저로 활용해 경영을 정상화하기로 해놓고선 명시적 약속이 없었다며 간단히 뒤집어 버렸다.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일종의 먹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작년에 설치한 비상대책위 활동과 총선에서 그렇게 경제민주화를 선전하고, 김종인 마케팅을 해서 승리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뒷전으로 밀쳐버렸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되더라도 박 후보가 약속을 얼마나 지킬까. 엠비(MB)정부 2기에다, 대량의 먹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런 먹튀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의 일대일 경쟁력은 더 좋아졌다. 야권 후보들이 잘못한 탓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너무 좁게 운영했다. 두 후보 중에 누가 후보로 나설지 등의 문제는 단일화의 반쪽일 뿐이다. 또다른 반쪽은 두 후보가 야권 후보로서 일심동체가 돼 박근혜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고 차별화에 나서는 것이다. 두 후보는 투표시간 연장이나 경제민주화 등에서 박 후보와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다. 그렇게 단일화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갔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단일화 때문에 박 후보가 먹튀 할 시간만 벌어준 점을 두 후보는 성찰해야 한다. 이런 잘못에는 민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안철수 후보 캠프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를 알고 선거에 익숙한 민주당이 왜 단일화에만 목을 매고 ‘여야 전선’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한쪽에서는 단일화 프레임, 다른 한쪽에서는 차별화 프레임을 운영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단일화가 삐걱거리자 금방 실망해서 이탈하는 유권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두 후보 등 야권은 여야간 사회경제적 쟁점을 중심으로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 단일화 자체만으로는 못 이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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