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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연주 칼럼] 지난 며칠 동안의 생각

등록 2012-11-18 19:18수정 2018-05-11 15:47

정연주 언론인
정연주 언론인
지난 13일, 가까스로 야권 단일화 협상팀이 한자리에 앉았다. 이에 앞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진영 사이에 논의되어온 ‘새정치 공동선언’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아름다운 연대’를 위한 단일화 협상이 이제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단일화가 모든 걸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지배권력 세습을 차단하는 정권교체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기에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들에게는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단일화 협상은 중단되었다. 대권이 걸린 자리를 놓고 하는 협상이니 그게 일사천리로 진행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별로 없었을 터다. 그런데 제대로 판도 벌여보기 전에 이렇게 쉽게 엎어지리라고 내다본 이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게다.

어쩌다 이리 되어 버렸는가,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협상이 중단되고, 생채기 내는 발언을 하게 되면, 화학적 결합의 바탕은 무너지고, 정권교체의 가능성도 그만큼 멀어진다. 그런 생각이 들자 먼저 여러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명박 정권 아래서 온갖 박해를 받아온 이들 얼굴이다. 용산참사 가족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특히 저세상으로 떠난 분들과 그 유족, 공정방송 외치다가 해고되거나 중징계 등 온갖 불이익을 받아온 언론계 후배들….

이들에게는 이명박 정권을 이어받는 박근혜 체제가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절망의 체제이며, 그래서 정권교체는 아주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절망을 느끼는 이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가진 자, 강자가 더 많은 것, 더 많은 힘을 탐욕스럽게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패자가 되어버린 수많은 이들이 새 세상을 꿈꿔왔는데, 그리고 그 새 세상의 출발이 우선 정권교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를 위한 단일화 과정이 멎어버리다니, 걱정과 근심, 아픔과 분노가 어찌 없겠는가.

사실 단일화가 되어도 우리 사회의 조건은 자유·진보세력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우리 사회 수구 카르텔의 힘은 막강하다. 특히 이 카르텔의 성채 구실을 해주는 제도권 언론의 경우, 수구신문에 더하여 정권 친위대가 장악한 방송까지 가세하면서 9 대 1로 수구세력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선거는 당시의 조건만 놓고 보면 해보나 마나 한, 야권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였다. 이명박 정권 심판, 오세훈 시장의 헛발짓,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에게 터진 온갖 악재, 여기에 박원순 변호사와 안철수 교수 사이의 감동, 박원순-박영선 후보의 아름다운 경쟁 등 여러 조건만 놓고 보면 게임이 안 되는 선거였다. 그런데 결과는 나경원 후보 46.2% 득표였다. 이게 온갖 악재에서도 수구보수세력이 얻어내는 표의 최저선이다.

그런데 그것도 서울에서다. 영남의 ‘묻지마’ 투표, 충청권의 육영수 향수, 강원권의 보수성향 등을 생각하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득표의 전국적 마지노선이 어디인지 쉽게 짐작이 된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고 조건이다. 97년과 2002년 대선 때 온갖 기적이 모였음에도 간신히 39만표(김대중), 57만표(노무현) 차이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단일화 중단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한쪽에서는 구태 정치다, 그런 상태로는 단일화해도 필패다, 라는 주장이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한나라당 출신’ 이태규 단일화 협상 대표는 그럼 뭐냐는 의문이 나왔다. 후보 주변의 정치낭인들 폐해 주장도 있었다. 그런 과정에 불신이 쌓여 갔다.

백낙청 교수는 상대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렇게 상대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의 바닥에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겸허의 덕목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스럽게 단일화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아픈 일들을 귀한 경험으로 삼아 역지사지와 겸허의 자세로 ‘아름다운 연대’를 꼭 이뤄내기 바란다. 그렇게 되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자유·민주세력의 기반과 외연은 더 넓어지고, 이는 정권교체의 단단한 기틀이 된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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