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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사막의 성인

등록 2012-10-31 19:3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큰 재산을 물려받은 열여덟살 청년이 성경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러면 천국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는 이웃에게 땅을 주고, 남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증한 뒤 사막에 들어가 헌신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집트의 성 안토니우스는 그렇게 수도승이 되었다.

크리스트교가 박해를 받을 때 가장 고양된 형태의 신앙의 삶은 오히려 죽음이었다. 순교한다는 것은 인간이 천국의 문간에 들어섰다는 증표였다. 박해가 사라진 뒤엔 수도승의 삶이 순교를 대신해 지순한 믿음의 표시가 됐다. 예로부터 이집트에서 사막은 악마의 거주지로 간주됐다. 그곳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였다. 문명이 주는 물질적 쾌락의 세계에서 자신을 죽이는 것은 다른 의미의 순교이기도 했다. 은둔했음에도 추종자의 무리가 생겨 점차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엄격한 자기 계율을 만들어 지키고, 명상을 통해 악마와 투쟁하며, 궁극적으로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이전에 순교자들이 도달했던 영적 삶의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전기를 통해 안토니우스의 행적을 안다. 그 기록은 여러 모습의 괴물과 악령의 위협은 물론 금은보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성인의 면모도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성인전은 전도의 목적으로 성인의 일생을 극적으로 미화시키고 기적의 요인을 남발한다는 이유로 사실성을 의심받는다. 그렇지만 재산을 초개처럼 본 그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 때문에 그 전기가 널리 인기가 높았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적 없는 사막에 널린 금과 은은 악마의 유혹이리라 무시해버리자 그것들이 사라졌다. 그가 주에게 외쳤다. “누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대답이 돌아왔다. “겸허함만이 유혹을 피하게 해주리라.” 정치계건 종교계건 내려놓지 못하는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서 정녕 그런 겸허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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