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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아버지의 편지

등록 2012-10-24 19:34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옥중의 아버지는 열세살 외동딸의 생일에 해줄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마저 감옥에 있어 더 가여운 딸에게 아버지는 형무소의 높은 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영혼으로 된 선물을 보냈다. 3년 동안 딸에게 보낸 196통 편지의 내용은 세계사였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 저항하며 아홉번 감옥에 갔던 네루는 세계사의 물결 속에 흐르는 신성한 임무에 대한 의식을 상기시키려고 딸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단적으로 그 임무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요구였다.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이 된 그 편지를 쓰기 위해 네루는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명의 출발점부터 자신이 살던 시대까지 망라하며 역사를 보는 원대한 안목을 드러냈다. 그는 학교에서 나라별로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겨, 역사의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세계 전체의 역사를 딸에게 설명했다. 그런 논지의 밑바닥에는 인도에서, 그리고 인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그는 몽골 제국과 칭기즈칸을 강조하며, 아시아의 위대성을 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연유로 그 책은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최초의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일제에 저항한 용감한 여성이라고 말하며 딸에게 “3·1정신을 본받으라”고 권했다. 한마디로 그는 오늘날 역사학의 흐름 가운데 하나인 ‘약자의 눈으로 보는 역사’를 이미 오래전에 실천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을 받은 딸 인디라 간디가 총리가 되어 인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본 장교 출신으로 헌정 파괴를 자행했던 아버지가 억압적으로 강탈한 것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 땅의 어느 딸에게 <세계사 편력>의 일독을 권한다. 고통받는 민중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딴 나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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