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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애기 젖 물리고 강의하던 그 교수에게…

등록 2012-10-19 19:48수정 2012-10-19 21:06

이진순 교수
이진순 교수
[토요판] 엄마의 콤플렉스
‘강의중 모유수유’ 사건의 전말
얼마 전 미국의 한 교수가 강의시간에 아기를 데려와 모유수유를 했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국내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는데 사건의 배경과 논쟁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생략하는 바람에 “세상에 이런 일이” 투의 희한한 가십거리로 다뤄진 감이 있다. 그날은 아메리칸대학 에이드리엔 파인 교수의 개강날이었다. 대학에서 강의 첫날은 좀 특별하다. 교수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0~20장 분량의 한 학기 강의 계획안과 과제물 목록이 조목조목 소개되고 수업 중에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규율과 평가방식이 꼼꼼히 설명되는 날이다. 여느날 같으면 다른 대안을 강구해볼 수도 있겠지만 첫날은 그게 여의치 않다. 개강 무렵 입원해 있던 내 동료교수도, 대리수업을 해주겠다는 내 제의를 뿌리치고 의사의 허락을 받은 채 잠시 외출해 강의를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간 적이 있을 만큼 첫 수업에 대한 교수들의 책임감은 대단하다.

파인 교수는 온두라스와 한국, 이집트 등을 돌며 성과 보건, 인권과 폭력시스템을 연구했다. 그가 맡은 과목은 ‘섹스, 젠더 그리고 문화’라는 여성학 강의였고 40명의 학생이 교실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파인 교수의 아기는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고 싱글맘인 그는 급히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어린이집에서는 고열이 있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격리하고 집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교실에 아이를 데리고 온 파인 교수는 수업 중에 아기가 칭얼대자 젖을 물리고 강의를 계속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한 학생이 그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고 이 사건이 학교신문에 실리자 파인 교수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난 휴강을 안 하려고 내 여성인류학 수업 중에 아픈 아이를 수유했다. 나는 요령껏 가리며 젖을 물렸기 때문에 누가 내 젖꼭지를 볼 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혹 봤다 한들 대학교수도 자기들처럼 젖꼭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만이다.”

파인 교수의 행동이 최선이었다고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 편이 수업을 빼먹거나 조교한테 애를 보라고 맡기는 것보다는 도덕적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수업에도, 베이비시터가 안 왔다고 난감해하는 학생에게 아기를 데려오라고 한 적이 있다. 두살짜리 최연소 학생(?) 덕에 그날 수업은 모두가 유쾌했고 아이 엄마는 결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파인 교수 사건에 대한 미국 언론의 접근도 인상적이다. <시엔엔>(CNN)은 대학에 여성 교원은 늘어나는데 직장탁아가 충분치 못한 현실을 문제 삼았고, <허핑턴 포스트>도 대학 당국이 이런 경우에 대비하는 응급탁아제도를 왜 마련하지 못했냐고 꼬집었다. 만일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최근 여성이 임신을 핑계로 특권을 누린다고 비아냥거리는 ‘임슬아치’란 유행어가 인터넷에 떠도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사례를 연구하고 한국어에도 능통하다는 파인 교수가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지 참 궁금하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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