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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안보장사’로는 미래 없다

등록 2012-10-15 19:23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열렬한 환대를 받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물병 세례를 받는 등 봉변을 당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저 ××가 왜 여기 왔어”라는 등의 냉대를 받았다. 지난 일요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이북도민 체육대회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일부 실향민들이 세 후보에게 보인 각기 다른 반응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 하나가 여전히 우리 현실을 짓누르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른바 ‘반공 이데올로기’다. 해방 이후 극심했던 좌우익 대결과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반공 이데올로기가 6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6·25를 전후해 고향인 북한땅에 모든 것을 남겨둔 채 쫓겨나다시피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공산주의 정권인 북한에 대해 갖는 적개심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실향민들 중에서도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은 증오심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우리 사회 전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산시킨 것은 수구성향의 정치권력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5·16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시킨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도 광주민주항쟁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몰아붙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숱한 간첩사건도 북한을 끌어들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조작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간첩사건이 이어지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시대착오적인 이런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새누리당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일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을 올 2월 부결시켰다. 최근 새누리당이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새누리당은 엔엘엘 문제는 영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들이 무얼 노리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노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했던 문 후보에게 ‘종북 올가미’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타격을 주고자 하는 뻔한 속셈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색깔론’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바는 일정 정도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 효창운동장에서 그 효과가 나타났다. 일부 실향민들은 문 후보에게 ‘영토포기 매국행위’라는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며 ‘함경도 빨갱이 물러가라’고 윽박질렀다. 한 참석자는 문 후보에게 ‘종북 아니죠’라고 다그쳤고, 문 후보 쪽은 ‘네 아닙니다’라는 응답을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열렬한 환대를 받은 박 후보는 “누구보다도 안보라든가 자유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앞장서시는 분들을 만나서 반갑다”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자신만이 안보를 책임질 후보이고 나머지는 대북관이 의심스럽다는 분위기를 은연중 풍기고 있는 것임을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국가 안보를 정권 유지에 이용하려는 ‘안보장사’를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다. 퇴행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대 정권을 유지하려는 건 우리 민족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남북관계가 어그러지면서 소모적인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남북 모두 나라 안팎에서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음은 지금 보는 그대로다.

박 후보는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도 상대에겐 끊임없이 ‘네 색깔을 밝히라’며 편을 가르려 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다. 제발 미몽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케케묵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정치세력에겐 미래가 없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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