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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왕의 표리부동

등록 2012-09-12 19:36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성을 존중한다던 18세기 유럽에는 왕이면서도 계몽주의의 가치를 인정하여 통치 기반으로 삼으려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런 계몽전제군주의 대표적인 인물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였다. 그는 플루트를 즐겨 불어 전쟁터에도 가지고 갔고, 계몽사상가들의 저작을 주의 깊게 읽으며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묘사한 군주의 냉혹한 비도덕성을 비난하면서 스스로 계몽군주의 이상적인 모습을 설파했다. 군주라 하여 거리낌없이 사치와 방탕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주도 밑바닥의 국민과 마찬가지로 인간임을 자각해야 한다. 군주가 최고의 법관, 장군, 행정가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군주는 국가 제일의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공정하고 지혜롭고 사리사욕 없이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이 자신의 아름다운 말과 일치했을까? 그는 50대 중반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를 초빙하여 베를린 교외에 있는 포츠담 궁전에서 머무르게 했다. 계몽전제군주가 평소 흠모하던 사상가를 초빙했지만 곧 갈등이 생겼다. 볼테르는 상대방이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볼테르는 대제가 신임하던 궁정학자를 조롱했다. 게다가 대제가 쓴 프랑스어 시를 책으로 내려고 하자 대제의 수치스러운 면모를 외부에 폭로하지 말라고 대꾸했다. 대제는 오렌지는 물을 빨아먹은 다음에 버리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볼테르는 떠나야 했다.

프리드리히는 비극을 보면 울었고, 병든 사냥개를 보살폈다. 그러나 곧 마을 전체를 유린하기도 했고, 갑자기 세금을 올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피를 보기 싫어해 죄인을 사형에 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에서 부상자들의 다리를 잘라 불구자로 만들고 비용을 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을 죽게 놔두는 것이 나으니 방치하라고 은밀히 명령했을 정도로 냉혹했다.

어디에서건 언행일치는 통치자의 중요한 덕목임이 확실하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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