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리스의 향배가 관건이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2014년까지 115억유로의 예산을 감축하기로 한 바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달 말 독일과 프랑스 정상을 만나 감축 기한을 2016년으로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리스가 9월 중에 긴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유럽연합(EU) 등이 그리스의 긴축기한 연장을 거부하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다시 부상할 것이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그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채무국 국채 매입 여부를 결정할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6일), 위기에 빠진 유로존 국가를 지원하는 유럽안정화기구(ESM)의 위헌 여부를 판결하는 독일 헌법재판소 재판(12일) 등 유로존 위기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일정이 9월에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삐끗하면 유로존 위기는 또 한차례 세계경제를 엄습할 것이다. ‘운명의 9월’이다.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준 게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주말 열린 연준 연례회의에서 3차 양적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일단 추가 경기부양 가능성을 열어둠에 따라 세계 주가는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버냉키도 지적했듯이 “최근 금융시장의 주요 긴장요인은 유럽 정세에 대한 불안”이다. 유로존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경기도 정상화되기 힘들다. 더욱이 미국 연준은 금융위기 이후 두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2조3000억달러를 시장에 쏟아부었지만 고용시장은 여전히 침체 상태다. 12~13일로 예정된 연준 통화정책회의에서 구체적인 경기부양책이 과연 나오느냐에 따라 세계경제는 또 한차례 출렁일 것이다.
실물시장도 이미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다. 세계의 공장 구실을 하던 중국은 엔진이 서서히 식어가는 중이다.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정부 목표치인 7.5%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 3~5년 동안 중국의 성장률이 5~7%에 머물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재앙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우리 경제도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성장의 버팀목이었던 수출은 지난 3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8월에도 6.2% 감소하는 등 계속 추락중이다. 부동산시장 침체와 기업투자 위축과 높은 실업률, 소비 급감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런데도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부는 더 쏟아부을 재정 여력이 부족하고, 기업은 시계 제로인 상태에서 투자를 꺼리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는 쓸 돈이 없다. 먼저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이 도산하고,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가계가 쓰러지고, 정부는 쓰러지는 기업과 가계를 뒤치다꺼리하느라 허덕일 것이다. 2008년 미국의 리먼사태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가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점점 확산되고 깊어져 우리 세대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장기불황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양상이다.
고통을 감내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갖춰나가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도를 모색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고통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모른다. 고통의 파고가 얼마나 높을지 누구도 모른다.
그래도 기댈 건 정부밖에 없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은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적자 국채를 늘리지 않는 방법으로 10조원 이상의 재정투자를 계획중이다.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기상황을 길게 보고 대처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는 재정투자는 경제를 오히려 더 멍들게 할 뿐이다.
경제민주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선 후보들도 지금 당장 닥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눈앞의 위기에 대한 해법도 내놓지 못하면서 먼 훗날의 경제민주화를 외친들 누가 믿겠는가. 상황이 그만큼 한가롭지도 않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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