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명백한 운명

등록 2012-08-15 20:19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8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은 텍사스의 병합을 다룬 평론에서 ‘명백한 운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에 주어진 명백한 운명은 미대륙 전체로 영토를 확대해서 자유와 자치 정부라는 ‘위대한 실험’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서부 개척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던 당시, 그 말은 신이 미국의 백인들에게 영토를 확장시킬 운명을 부여했다고 합리화할 명분을 주었다. 그렇게 팽창론자들의 구호가 된 그 말은 미국이 태평양 연안으로 세력을 확장할 때도 이용되었다.

현실적으로 명백한 운명의 개념은 오리건 주의 영유 문제와 관련해 처음으로 사용됐다. 로키산맥을 통과하는 오리건 통로가 개척된 뒤 그 지역이 농사짓기에 좋다는 소문이 미국 동부에 돌자 이주민이 급증했다. 미국은 영국과 공동 관리하던 이 지역을 단독으로 관리하기 원했다. 오설리번은 영국이 민주주의 전파라는 숭고한 목적 때문에 그 지역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해 미국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에게 명백한 운명이란 도덕적 이상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도덕이란 미국과 영국의 백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이었지 원주민들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미서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미국이 필리핀을 병합할 때도 명백한 운명이 거론됐다. 이를 두고 영국 시인 키플링은 ‘미국과 필리핀’이라 부제를 붙인 ‘백인의 부담’이란 시를 썼다. 그것은 백인의 제국주의가 미개한 인종을 교화하려는 부담감에서 시작한 것이라서 고귀한 정책으로 정당한 것이라는 도덕적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니 백인이 다른 국가나 민족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식민지인을 위해서라는 언설이 가능해진 것이다.

백인 스스로 부과한 의무만을 강조했기에 문제가 되는 교언영색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길 때까지 ‘운명적으로’ 반복된 1초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도덕감조차 사라지고 배타적 우월감만 남은 명백한 운명이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박근혜, 장준하 선생 유족과 화해 시도했지만…
박근혜 경선 캠프 벌써 ‘권력·노선투쟁’ 조짐
안철수쪽 페이스북에 ‘진실의 친구들’ 개설
망막 전달신호 해독…시각장애인 ‘빛볼 날’ 성큼
우리나라서 올림픽 폐막식을 했다면 어땠을까?
‘고의패배’ 배드민턴 대표팀 코치진 제명
[화보] 연재가 돌아왔어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2.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3.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증오의 시대, 기적의 순간들 [젠더 프리즘] 4.

증오의 시대, 기적의 순간들 [젠더 프리즘]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5.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