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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블록 어택’에 맞선 ‘도시 마을’의 산들바람

등록 2012-08-14 19:21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집은 살기 위한 곳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시대를 말한다. 지금 서울 토탈미술관에 가면 서울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수직의 뼈대 안에 다양한 모습의 집들이 위로 포개져 올라가는 특이한 구조물을 보게 된다. 이 전시는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MVRDV)과 글로벌 싱크탱크 와이팩토리(The Why Factory)가 3년간의 아시아 도시 조사를 끝낸 뒤 준비한 아시아 순회전이다. 이 전시회에서 작가들은 ‘블록 어택’(아파트나 초고층 건물 등 블록의 공격), 그리고 ‘버티컬 빌리지’(수직 마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전시의 디렉터 위니 마스는 “동아시아 지역 조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주거공간이 주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 즉 공간적 풍부함과 사회적 다양성 같은 것을 담아내지 못한 채 재산 증식의 수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며 ‘블록’들에 의해 포위된 현실을 ‘블록 어택’이라 불렀다. 도시들이 삽시간에 “대량생산된 주거양식의 침략”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는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서울은 이미 블록들이 마을을 거의 휩쓸어버린 상태이고, 베이징과 상하이는 블록들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단계라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서울이 130만 아파트 단위를 기록하며 가장 강력한 블록 어택을 받은 도시이다.

이들은 고층 건물이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면 그나마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욕구를 담아내는 ‘수직 마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건축 공법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제안이다.

그러나 살고 싶은 집과 마을에 대한 그림을 가진 주민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걱정이 된다. 게다가 이것은 또다른 토건사업이 될 우려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들이 ‘수직 마을’이라는 발상을 통해 진심으로 하려는 말은 사람 사는 주거공간, 곧 마을을 되찾자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마을은 농경적 마을이 아니라 근대 초기부터 만들어졌던 도시 마을이다. 철근콘크리트의 고층 주거타워들이 들어서기 전에 존재했던 온기 있는 동네, 삶의 지혜가 묻어 있는 공동체적 삶의 그릇 같은 장소 말이다.

편리하고 평등한 주거를 외쳐온 서울은 지난 10여년 동안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블록 어택을 당한 도시의 표본이다. 재개발의 물결 속에서 서울은 물리적, 문화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격을 당했다기보다 정부와 시장과 주민이 합세해서 “닥치고 경제!”를 외치면서 삶의 터전을 팔아넘겼다. 다양성이 포용되는 활기차고 친밀한 지역사회를 건강한 커뮤니티라고 본다면 서울은 그런 커뮤니티를 꿈꾸지 않은 지 오래다. 서울은 친척도, 이웃도, 때론 가족도 없는, ‘한 몸’ 관리하기에 바쁜 ‘무연’의 개인들이 분주하게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공간일 뿐이다.

이런 서울에 다행히 마을 만들기 바람이 불고 있다. 사업성과 수익성의 기준으로 계획한 도시건설의 파괴력을 간파한 시민들이 도심에서 마을 만들기를 통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골목, 항상 열려 있던 동네 미장원의 수다, 형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만홧가게와 헌책방, 흥겨운 마을 주막과 진지하게 마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사랑방을 기억한다. 개인성과 집단성이 상치되지 않는 삶, 돈이 전부가 아닌 삶, 품앗이와 단골의 개념이 살아 있는 동네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공동육아와 어린이 도서관, 녹색 도시 등을 주제로 새로운 도시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다”며 도시로 간 이주민 2, 3세대는 이제 “도시의 공기는 정겹다”면서 도시 안에 마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 신선한 도시 마을 만들기 바람을 서울시도 전격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바람이 아시아에 부는 블록 어택의 광기도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 천천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둘러보자. 버티컬 빌리지 전시회는 10월7일까지이니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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