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금융기관들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짬짜미(담합) 의혹으로 금융시장이 온통 시끄럽다. 은행에 대한 해외의 신뢰가 추락하고, 담합 때문에 더 내게 된 이자를 돌려달라는 소송도 제기됐다. 금리 담합으로 대출이자가 0.5%만 올라도 가계의 이자부담액이 어림잡아 1조7000억원이나 늘어난다고 하니 금융소비자 단체들의 집단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말 담합이 있었는지, 고객들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는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이 밝힐 일이다. 그러나 정말 한심한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금융감독당국의 태도다. 금융감독 수장들의 언행만 보면 그들이 금융감독을 책임진 사람들인지, 아니면 금융협회장들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금융산업을 죽이고 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책무를 진 감독 수장이라면 응당 철저한 사실 확인과 피해 파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피해보상이 차질 없이 되도록 조처하고, 관련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도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그것을 먼저 약속하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원장이란 사람은 생각도 안 해보고 “담합했다 생각 안 한다” 하고, 금감원장이란 사람은 조사도 제대로 안 해보고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며 금융기관들을 두둔하기 바쁘다. 금융기관들을 입막음하며 공정위의 조사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영락없는 금융협회장님들이다. 금융감독 수장들의 안중에 국민들은 없고 금융기관들만 있는 모양이다.
특히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우리 금융회사의 국제적 신뢰를 위해 (담합 의혹을 부정하는 대답을) 말했다”고 한다. 바로 금융위원장의 이러한 언행이 우리 금융의 국제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금융감독당국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금융소비자 보호다.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철저한 금융소비자 보호야말로 국민도 보호하고 금융기관도 발전시키는 ‘윈윈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산업은 소수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독과점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 금융산업에서는 대출 이자율, 보험료, 수수료 등에서 독과점적 가격 책정이 쉽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끼워팔기, 불완전판매 등도 빈발하고 있다. 최근 감사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금융기관들이 대출이자율을 결정할 때 가산금리를 마음대로 부풀릴 수 있는 것도 금융산업이 독과점화되어 경쟁이 없고 고객들을 상대로 쉽게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감독당국의 주도 아래 금융기관들이 모여 협의하고 공조하는 습성이 남아 있어 소수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기회가 많고 담합도 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비단 금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금융산업에서도 담함의 폐해가 그만큼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해 말 공정위는 보험가격 담합행위를 적발하여 16개 생명보험사에 36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금융산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탐욕이다. 아무리 실력있고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금융기관이라 하더라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그 어떤 금융공학 실력과 위험관리 기술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확실히 보았다. 독과점화된 우리 금융산업, 금융기관들이 고객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쉽게 행사할 수 있는 시장, 담합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과 관치의 추억, 쉽게 탐욕에 굴복하는 산업적 특성, 이 모든 것들은 금융기관들한테 고객들을 상대로 쉽게 돈을 벌라고 유혹한다.
금융기관들이 최선을 다해, 최대한 양질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철저히 하고 금융기관 간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 금융기관들의 실력을 높이고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며, 건전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또 서민·중산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금융감독 수장들이 협회장 노릇을 멈추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전념하도록 감독개혁을 해야 한다. 독점화된 금융산업구조도 개혁이 필요하다. 앞으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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