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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평범한 악

등록 2012-08-01 18:28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독일 유대인으로 미국에 귀화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에 따르면 나치와 스탈린의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그에 반드시 뒤따르는 테러에 의존하는 지배 형태다. 사상(idea)의 로고스(logos)인 이데올로기(ideology)는 인종, 계급, 민족과 같은 특정의 사상을 구심점으로 결집한다. 그 바탕 위에 긴밀하게 조직된 정치체제가 세워지며, 여기에는 테러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테러란 육체적 폭력은 물론 심리적 폭력까지도 체계적, 제도적, 계획적, 합법적으로 제약 없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본질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배일 뿐이다. 나치의 우파 파시즘과 스탈린의 좌파 사회주의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국민의 사고를 공식적 이데올로기에 순응시키려는 두 체제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이 더 중요하다. 아렌트의 기준으로 보면 현 정권과 진보(?) 쪽의 행태 모두는 전체주의의 정의를 충족시킨다.

아렌트는 2차대전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1963년에 출판된 것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사악하지 않고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히틀러 정권의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고 논했다. 그 보고서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악에 이용당하고 나아가 악을 돕는 관성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다. 맹목적인 복종심으로 악행을 예사로 저지르는 이 땅의 관료들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정의도 소화해낸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는 나태하고 뿌리 없는 개인들로 사회가 해체되고 국가는 무제한의 강압적인 장치로 전락한 환경에서 만연한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대중의 정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정치적 공동체를 확립하는 것에 달려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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