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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말과 소통] 경제민주화와 ‘공감’

등록 2012-07-23 19:35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대학생 아들과 딸을 둔 동네 아줌마가 있다. 가끔 수박을 먹는데, 아들과 딸의 태도가 좀 다르다. 작게 잘라서 그릇에 담아놓으면, 딸은 붉은 조각을 골라 먹는 반면 오빠는 하얀 부분이 붙어 있는 것들부터 입에 넣는다.

엄마는 평소 말수가 적은 아들이 수박도 수박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다른 일에서도 손해를 볼까봐 걱정이 된다. “얘, 발간 게 맛있는 거야. 그것부터 먹어야지.”

아들이 말한다. “엄마, 저도 알아요. 그런데 맛없는 게 남으면 결국 엄마가 다 드실 거잖아요.” 엄마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대통령 선거 사상 처음으로 ‘경제민주화’가 주요 이슈가 됐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한 모색은 우리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칠 핵심 현안이다. 계속되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가는 세계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논의가 철저할수록 좋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제시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은 재벌 중심 체제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순환출자 규제 등으로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우리나라 경제체제는 ‘대기업 주도의 대량생산 체제와 가격경쟁력에 의존한 수출 지향적 성장 모델’과 ‘노동 배제적 대자본 주도의 자본-국가 공조 체제’로 요약된다. 각종 불균형은 그 필연적 산물이다. 이런 틀을 바꾸려면 재벌 개혁은 필수적이다. 기존 순환출자는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등 새누리당처럼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게 아니라 진전된 개혁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거론되는 방안들은 주로 대-중소기업 관계, 곧 자본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지향한다. 여기에다 자본-노동 관계와 자본-국민 관계에 대한 개혁이 더해져야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채워진다. 특히 자본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바로잡아 노동자들이 나라 경제의 온당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조 조직률 제고, 산업별 교섭 활성화, 노동자의 경영참가 제도, 정규직·비정규직의 양분화 해소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자본-국민 관계와 관련해서는 금융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금융민주화와 조세 정의가 필수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공공기업 등의 영역을 넓혀 경제활동 형태를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적 정치는 흔히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민주적 경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경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는 개인과 가계, 기업 등을 포함하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경제적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국민을 위한’은 성취의 혜택이 골고루 분배되고 그럼으로써 가치 창조의 새 활력이 창출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 ‘국민에 의한’이란 말이 성립하려면 경제체제 운영이 지속적·구조적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민주적 경제는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어떤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10여년 전 김대중 정권은 ‘민주적 시장경제’를 검토하다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후퇴했고, 실제로는 더 물러나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다. 이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다수 국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의 기반은 소통과 공감이다. 한 그릇의 수박이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감동이 달라진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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