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주 아주 유쾌한 행사가 있었다. 행사 제목은 ‘삽질의 레이스’. 2011년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지원한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참가자들끼리 실패 사례를 나누는 자리였다. 한 참가자는 “아시아 소셜벤처 대회 실패, 소셜벤처 경연대회 실패, 세상 콘테스트 실패, 디자인 공모전 실패, 마케팅 공모전 2번 실패, 창업 관련 정부지원 사업 2건 실패, 캐릭터 지원사업 실패, 10월에 팀원 1명 퇴사, 12월에 팀원 1명 퇴사, 5월에 팀원 1명 퇴사”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축제 관련 일을 했던 팀의 대표는 ①춤추면 미친 건 줄 앎 ②무계획적으로 떠나면 살아갈 의지가 없거나 미친 건 줄 앎 ③성공한 사람(일명 멘토)이 아닌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정의 내리고 표현하면 미친 건 줄 앎 ④하고 싶은 일을 하면 미친 건 줄 앎. 바로 이런 상황이기에 자기 사업은 무수한 삽질로 끝났다고 했다.
‘삽질’은 쓸데없는 짓을 말한다. 위키백과에서는 용례로 군대에서 상급자들이 졸병에게 ‘규율’을 세우려는 의도로 삽질을 하게 했고, 공사판에서 중장비를 쓰면 될 것을 돈을 아끼려고 인부들에게 삽질을 시킨 것을 들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미처 자동화하지 못한 수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일도 ‘삽질’에 속할 것이다. 사실상 최단 코스로 스펙을 쌓아 안정된 직장에 취업해야 하는 경주마들에게 ‘삽질’은 금물이다. 자칭 ‘루저’ 또는 ‘폐인’들도 실은 삽질을 하지 않으려고 숨어버린 사람들이다. 숨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가들의 삽질 나눔 자리는 아주 새로운 의미를 지닌 자리이다.
이 행사에 ‘삽질의 레이스’라는 이름을 붙인 기획자 양기민씨는 행사를 통해 청년들이 제대로 실패하는 것과 그 경험을 나누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시에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실패도 못하게 하는 제도상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성공’이라고 부를 것도 없어진 ‘성장의 한계’ 상황에서 삽질은 청년들의 숙명이자 미학이라고 하면서 다수의 청년들이 과장된 공포 분위기 속에서 삽질조차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했다.
실패 사례 행사를 보면서 나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 제정으로 시작된 사회적 기업 정책이 이제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간 ‘협동 경제’에 대한 개념화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가시적 효과를 요구하는 제도 안에서 이 제도의 수혜자 청년들은 그야말로 헛발질만 했다. 청년들은 난데없이 영수증이나 챙기고 무수한 서류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 ‘멘붕’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공개적으로 나누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삽질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에서 말하는 ‘가치’와 시장에서 말하는 ‘수익’ 창출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기존 기업계의 복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바탕이 될 새로운 사회원리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강박에서 풀려나 용기있게 삶을 상상하고 실험하며 서로로부터 배우는 변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기업계는 앞으로 이런 실패로부터 배우는 자리만 잘 마련하면 획기적인 성장을 할 것이다. 그간 사회적 기업 일을 맡아 하면서 생색내기, 나눠먹기, 중복 수혜, 정부의존 부담 인력의 양산 등의 비난을 받아온 공무원들도 실패 사례를 통해 배우는 자리에 함께한다면 그런 문제도 쉽게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현 사회의 위기는 기존의 정치경제학으로 풀릴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묻는 생명-정치 경제학으로 풀어낼 일이다. 재미와 보람과 비전을 가진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청년들의 삽질이 실은 더욱 허무한 헛발질들로 가득한 ‘먹튀(먹고 튀는) 시장사회’를 변화시켜낼 것이다. 그 무엇보다 동료들과 삶을 일구어낼 거점을 마련하지 않고서 누군들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낼 수 있으랴!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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