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그때도 새벽 3시였어. 광주 외곽 상무대에서 계엄군 탱크가 기동하기 시작한 건. 충정작전의 시작이었지. 캐터필러 소리가 도청을 향하고 있는 동안 시내에선 애절한 목소리만 들렸어.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 이 소리는 곧 투항을 강압하는 선무방송으로 대체됐지. 그것도 잠시, 자동화기에서 불을 뿜었고, 웅크리고 있던 시민들은 숨죽이며 오열했지….
<두 개의 문> 앞에서 대뜸 마주친 ‘새벽 3시’. 2009년 1월20일 서울 경찰특공대가 출동한 것도 그 시각이었지. 30분 뒤 목적지인 용산 남일당 건물 근처에 도착했을 때, 헛기침에도 삐걱대는 양철 망루는 서치라이트 불빛에 요철까지 드러낸 채 떨고 있었지. 선무방송은 한겨울 칼바람을 가르며 농성자의 가슴을 후벼팠어. 이렇게 ‘새벽 3시’가 자극한 연상은 용산 참사와 광주 학살, 비극의 데칼코마니를 완성시켰지. 특수부대, 무관용, 최종적 해결, 청소. ‘그 이후’도 닮은꼴.
왜 공수특전사를 투입했지? 필살기를 요구하는 대테러 작전, 적진 깊숙이 침투해 보급로 폭파, 지휘소 습격, 요인 암살 등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말이야. 7여단 33, 35대대, 12·12 군사반란에서도 선봉이었지? 18일 전남대 앞 시위가 특별했던 건 아니었어. 5·17 계엄 확대와 김대중씨 연행 소식에 술렁이긴 했지만, 전날과 다르진 않았어. 그런데 M16에 장전 및 착검까지 한 공수부대가 등장했어. 시위대는 물론 구경꾼까지 무자비하게 난타했지. 찢어지고 깨진 시민들. 몸 자체가 1급 살인병기라는 그들을 풀기로 했을 때 이미 예상했을 거야. 만행은 시민의 저항을 유도하고, 이는 더 무자비한 학살의 빌미가 되고.
남일당 출동을 명받은 것은 서울 경찰특공대 제1, 제2제대였어.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테러 작전을 위해 설치된 부대지. 특수부대 출신 중에서 엄선해 구성한, 특전사 이상의 특수부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유증기로 가득 찬 폭발 직전의 생지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부대지.
작전? 긴 말 필요 없어. ‘청야’라고, 거창, 함평 양민학살사건 때 썼던 작전명.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 암매장하건 불태우건 말이야. 수많은 희생 끝에 시민들은 계엄군을 광주 밖으로 몰아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평화였어. 사실 싸움이 되겠어? 카빈과 기관총이, 1급 살상무기인 공수부대원과 무지렁이 시민이, 낡은 트럭과 탱크가 말이야.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던 시민들은 마지막날 대표들이 상무대로 찾아가 지휘관을 만나고서야 알았지. 전두환과 신군부가 바라는 건 희생양이라는 것을. 광주는 그들의 번제라는 것을. 27일 새벽 계엄군은 저항하는 마지막 1인까지 사살하고, 번제를 끝냈지.
새벽 6시50분, 특공대는 망루로 진입했어. 철거민들이 옥상으로 올라가고 불과 24시간 만이었지. 망루는 그들 표현대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지. 여기저기 불도 나고. 무자비한 푸닥거리 중에 요원들은 일단 망루를 빠져나왔어. 그만큼 위험했던 거야. 특공대가 그랬다면 그 무지렁이 아저씨들은 어땠을까. 그런데, 불과 10여분 만에 특공대는 다시 들어갔어. 단말마 비명이 다시 터져나오고,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지. ‘저기 사람 있다!’라는 울부짖음도 들렸고. 빈약한 망루는 2~3분 만에 무너져 내렸지. 망루 속 사람과 그들의 꿈도 함께. 왜 다시 들어간 거지? 상황은 사실상 끝났는데.
번제의 효과는 확실했지. 학살은 전씨에게 정권 찬탈과 폭정의 문을 열어주었어. 학살도 했는데 무서울 게 있겠어. 일상적인 체포 구금 고문 그리고 삼청교육대, 녹화사업, 의문사 등. 용산참사 역시 공포시대의 문을 열었지. 사찰과 공작이 횡행하고, 검경, 군, 여당, 방송이 앞장서고.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의 행진이 시작됐지. 그러나 절대권력엔 출구가 없지. 철거민의 막다른 망루와 다르지 않아. 박정희는 부하에게 피살됐고, 전씨는 산중 유폐를 거쳐 철창에 갔지. 무슨 염치로 밝은 세상 바라겠어. 참회할 시간이 있다는 건 행운이야. 두드릴 문이 있으니.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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