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표 중에서 일자리 성적표가 특히 실망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인들 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지 않았겠나. 좋은 일자리만 많이 만들면 우리 사회·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핵심문제들을 대부분 쉽게 해결할 수 있고,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 이유는 재벌에 기대어 일자리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이니, 재벌이 더 커지면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벌 종속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매년 천문학적인 규모의 각종 지원을 재벌들에 ‘올인’하듯 퍼부어주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재벌 복지병’이 만연한 ‘재벌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을 뿐이다.
첫째, 재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열심히 줄였다. 비용절약을 위해 자동화투자, 아웃소싱, 사내하청·용역·기타 비정규직 대체 등을 열심히 하였다. 중소기업 연차보고서를 보면 2000~2009년 기간에 우리나라 중소기업 취업자는 모두 307만명이 늘었으나 대기업 취업자는 오히려 44만명이 줄어 전체 취업자는 263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대기업 취업자 비중은 16%에서 12%로 급감하였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실로 각종 정부지원을 독식하다시피 했음에도 일자리 창출에서 절대수치와 고용기여율 모두 감소했다.
둘째, 자신들이 스스로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가면서 다른 곳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기여하기만 해도 되겠지만, 우리 재벌들은 오히려 좋은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있다.
기업은 왕성한 성장단계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한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려면 유망한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 대기업, 그리고 거대기업으로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기업생태계’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들의 독과점적 시장지배와 막강한 경제적 지배력 행사로 인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극히 어려운 환경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업체는 2001년 265만개에서 2009년 307만개로 42만개 증가한 반면, 대기업 사업체는 같은 기간 9169개에서 2916개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제조업의 경우 대기업 비중이 우리나라는 0.2%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10.7%, 독일 2.1%, 일본 1.4%이다. 주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특히 대기업체 비중이 크게 낮다. 대기업으로 성장하지는 못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만 잔뜩 늘어나는 우리 현실을 잘 대변해준다.
‘30마리 고래’가 좁은 연못에 가득 들어차 법도 없고 규칙도 없이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작은 고기들이 어찌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리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 보고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소수 재벌 중심 경제체제를 개혁하여 다수의 대기업, 무수한 중견기업이 공존하는 민주적 시장경제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첫째, 재벌 대기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자본중심·양적 성장 정책, 즉 성장을 위한 성장 정책을 내수 위주·중소기업·사람 중심의 질적 성장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둘째, 공정거래법을 강화하여 재벌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불공정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고 중소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여건을 확고하게 조성해야 한다. 셋째, 현재 재벌 대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독식하고 있는 각종 조세·재정·연구개발(R&D)·전기료감면 등 일체의 정부 지원에서 재벌 대기업을 배제하고 모두 중소기업 지원으로 돌림과 동시에 체계적인 중소기업 육성·지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기존의 재벌 대기업들은 스스로 생존하도록 하면서 새로운 대기업이 계속 탄생할 수 있는 역동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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