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5세기 말부터 이탈리아는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 왕이 다스렸다. 왕의 큰 관심사는 휘하의 고트인과 점령한 로마인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로마의 문화나 제도를 대체로 유지하면서 고트인은 군사력만을 담당토록 만들었다. 이런 통치 방식으로 로마인과 고트인의 공생 체계가 어느 정도 확립됐다. 그러나 아리우스파의 기독교를 믿던 고트인과 정통 가톨릭을 고수하던 로마인의 마찰이 심해졌다. 로마인에 대한 왕의 태도도 점차 가혹하게 변했다. 보에티우스의 운명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왕은 융합 정책의 일환으로 당대 최고 철학자 보에티우스를 수상에 임명했다. 그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주석을 달며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불행히도 주석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의 작업은 고대 말기 최대의 문화유산이라 말할 수 있다. 라틴어의 철학적 용어 체계를 확립해서 서유럽 세계에 철학은 물론 신학과 법학을 위한 설명 도구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철학의 위안>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는 서로마 교회와 동로마 교회의 관계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한편 동로마제국에선 테오도리쿠스 왕국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했다. 그런 상황에서 편지를 주고받은 보에티우스의 행동은 왕의 의심을 살 만했고, 결국 그는 반역 혐의로 투옥됐다. 1년 뒤 처형되기까지 운명을 탓하지 않고 감옥에서 쓴 책이 <철학의 위안>이다. 의인화된 ‘철학’과 보에티우스 사이의 대화에서, 그는 세상이 불공평해 보여도 더 높은 선이 존재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의 섭리가 명한 참된 행복과 최고의 선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불행과 정의의 관계, 선과 악의 문제를 철학적 사고 속에서 찾으려 한 시도였다.
그는 왕국에서 반역의 혐의를 받아가며 자신이 뜻한 바 옳은 일을 행하려 했다. 국가수반의 무리한 행동에 눈감는 이곳 공화국 관료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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