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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존중할 것은 능력

등록 2012-06-06 19:31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뛰어난 전술과 용맹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의 군대가 패망한 이유는 별로 알지 못한다. 승리자만 기록해온 역사학의 관행 때문일 게다.

페르시아에는 멤논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로도스 섬 출신이니, 본디 그리스 사람이다. 그리스에선 실패한 정치가나 군인이 추방당하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적국일지라도 능력을 인정해주는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멤논의 형 멘토르는 그렇게 페르시아 서부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 지역 총독이었던 멘토르의 장인은 반역에 실패했다. 그를 도왔던 멘토르와 멤논은 다시 망명의 길에 올랐다. 사면받은 멘토르는 이집트 정벌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멤논을 다시 페르시아로 불러들였다. 멘토르가 사망한 뒤 멤논이 총사령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국왕이 거부했다. 반역 경력자에게 중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르시아의 치명적 실수였다. 대제의 군대가 침공했다. 보병도 적고 군량도 부족했고 해군도 없던 그는 거기에 맞춰 작전을 짰다. 속전속결로 점령해 군량을 조달하고 항구를 점령해 해군력을 봉쇄한다는 것이다. 멤논은 그 전략을 간파했다. 페르시아 본토에서 전쟁을 피하는 한편 해군을 파견해 마케도니아 영토를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페르시아 전선에서는 계속 후퇴하며 농지를 태워 군량을 고갈시키면 알렉산드로스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페르시아 최고의 선택이었을 게다. 그러나 지혜보다 용기가 앞선 페르시아 장군들은 맞서 싸웠다. 그라니쿠스 강가에서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와 맞선 페르시아는 대패했다. 뒤늦게 진가를 알아차린 국왕은 멤논을 총사령관에 임명했으나 너무 늦었다. 멤논은 알렉산드로스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하고, 그리스의 해방을 바라는 스파르타 국왕과 접촉하며 알렉산드로스를 곤경에 빠트렸지만 결국 전사했다. 이후 페르시아의 멸망은 명확한 일이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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