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지난해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패배한 뒤 당 안팎이 시끌시끌하던 때, 홍준표 당대표는 이렇게 한탄했다. “이 정부에는 정치적 동지가 없다. 정치적 동업자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 동지’라면 가치를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다. 그래서 험한 조건 속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사적 이해가 아닌 공동체의 선을 위해 몸을 던진다. 반면에 ‘정치적 동업자’는 말 그대로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계산하고 주고받고 계산이 틀리면 인간관계도 끝나버리는 냉혹한 상거래 같은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의 개념을 빌리면 전자는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 후자는 ‘게젤샤프트’(이익사회) 정도가 되겠다.
새누리당, 조중동, 권력친위대가 장악한 방송, 재벌, 관료집단, 검찰 등이 어우러져 있는 수구보수집단의 작동 원리는 정치적 동업의식 또는 이익사회 논리다.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뜨거운 욕망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다. 전쟁을 치르듯 죽기살기 식이다. 이게 ‘홍보 찌라시’지 언론이냐는 비아냥 따위에는 아랑곳 않고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해온 조중동의 정치행위,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파업으로 방송도 조직도 다 망가져 가고 있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으며 후배들의 목을 계속 쳐대는 방송사 권력친위대들, 마구잡이 수사의 달인 정치검찰, ‘광우병 발생시 즉각 수입중단’ 광고처럼 입만 뻥끗하면 거짓말을 내뱉는 관료집단…. 그들에게 정의나 공동선 같은 건 허깨비일 뿐이다.
오히려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그래서 위기 때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의 근원은 바로 게젤샤프트적 이해관계, ‘정치적 동업자’로서 주고받는 계산, 권력과 부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탐욕이 아니겠는가. 이들에게 가장 큰 그리고 가장 뼈아픈 교훈은 ‘잃어버린 10년’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박탈감과 허기를 메울 길이 없었다. 얼마나 권력과 재물에 허기가 졌으면 최시중 등 엠비 핵심 측근들의 행태와 비리 부패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 되었겠는가.
수구보수가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했는지를 나는 직접 경험했다. 이들은 방송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고 굳세게 믿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자기편이니, 방송만 장악하면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 있고, 다시 찾아온 정권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조중동에 종편까지 주었다. 1997년, 2002년 대선 때 정권을 빼앗긴 이유도, 촛불시위 때 정권이 산사태처럼 붕괴 위기를 맞은 것도 방송 때문이라고 굳세게 믿었다. 평소에는 여야 사이도 좋고 화기애애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한국방송> 문제만 나오면 ‘전쟁터’가 되었다고 문방위원을 지낸 천영세 전 민노당 대표가 회고했다. 수구보수는 그렇게 치열했다. 나는 <한국방송> 사장 재임 동안 그리고 해임되는 과정에서 그 집요함과 치열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총선이 끝난 뒤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수구보수의 이런 치열함, 강렬한 권력욕망,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철저한 동업자 의식이었다. 이에 비해 야권은, 특히 민주통합당은 가치에 대한 갈망도, 동지적 열정도,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저항의 순수함도, 싸움의 치열함도 사그라진 것 같았다. ‘국회의원’이라는 특권계급의 획득을 위해 당선에 목을 매는, 그래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제 욕심만 챙기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총선 뒤 그리고 최근 당내 권력을 둘러싸고 내뱉는 말들이나, 보이는 행태, 상대방 가슴을 후벼파는 가학행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그들 스스로가 바로 문제의 한 중요한 부분이고, 그래서 총체적 반성이 절실한데, 자신들은 마치 무오류의 성자인 듯 상대방 흠결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에다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사태를 보면, 지금 야권에 가장 절박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가치를 가슴에 다시 활활 불태우기 위해 심령 대부흥회라도 열어서 참회의 시간부터 갖는 일일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믿어온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말 치열해져야 한다. 수구보수는 전쟁 치르듯 맹렬하게 싸우고 있지 않는가.
정연주 언론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