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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앙코르!

등록 2012-05-01 19:36수정 2012-05-02 10:58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변치 않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던 말이 국민적 공감을 얻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녹아 사라져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오래된 것을 그리워하고, 변치 않는 것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28년이 지났다. 사십 줄에 접어든 그들은 올해도 변함없이 공연을 올렸다. ‘노찾사’는 1980년대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대에 생긴 노래패다. 가난하고 불안한 시대였지만 시민들은 민주와 통일과 자유의 꿈을 품고 살았고, 특히 대학생들이 그러했다. 운동가요로 새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던 청년들은 거대한 대중집회마다 함께했다. 그들의 노래는 대학의 대강당과 노천극장, 명동성당과 성문밖교회, 종로 거리와 구로공단, 민주를 향한 열망이 있는 모든 곳에 울려 퍼졌다. 격전장에서 폭력과 고문으로 투사들이 다치고 죽어 가는 마당에 무슨 노래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렇기에 더욱 “예술은 사회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끼를 감추고 예술운동에 ‘복무’했던 이들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이제 회사원으로, 전업주부로, 또 전문 노래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 아내와 남편으로 회사일과 가정일에 분주해졌지만 짬짬이 모여 연습을 하고 ‘그날’이 오기를 함께 기다렸던 동지들을 위해 노래를 계속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노찾사’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던 편은 아니다. 비틀스와 밥 딜런의 노래를 즐겨 듣던 내게 그들의 노래는 너무 단조롭고 엄숙하다. 러시아 군가풍의 비장한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동요처럼 부르는 것이 거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까다로운 취향 따위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네 삶이 점점 더 고단해지고, 우리들이 ‘노동하는 동물’과 ‘소비하는 속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노찾사’ 공연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나는 그 공연에 제사를 지내러 가듯, 예배를 보러 가듯 간다. 때로 지루한, 그러나 반복되는 그 익숙함을 즐기고, 비장한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조금씩 나이 든 그러나 여전히 소박하고 해맑은 그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극장을 나선다.

지난 주말, “우리, 지금 여기에”라는 주제로 펼쳐진 그들의 공연은 꽤 파격적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조직력을 약화시킬지 모르는 여타의 잡음을 불허했기에 개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던 그간의 집단주의 문화를 깨고, ‘노찾사’ 멤버들이 무대에서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8명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불러주었다. “좌파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가 없고, 딴따라가 아니면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계속 “좌파 딴따라”로 살아갈 거라는 성태씨, 하루하루 살기가 점점 더 고단해진다는 월급쟁이 종홍씨,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있는 자신이 요즘 들어 꽤 괜찮게 느껴진다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부른 문정씨, 세계적인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노찾사에 들어와 조신하게 하느라 힘들었다며 비욘세의 노래를 탁월한 가창력으로 불러준 연이씨, 그들은 오래된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 이렇게 살아왔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우리, 있는 그대로 만나서 재미난 일을 하면 어때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이제 전국 순회공연을 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듯하다.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그때를 기억하는 486들이 곳곳에 모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를 이야기하는 자리, 바로 그 자리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열어줄 것이다. 그 자리에 꼭 자녀들을 초대하시라. 부모에게도 불안한 열정의 청년시대가 있었다는 것, 나라와 이웃을 향한 헌신의 감각이 살아 있다면 나름 평생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런 부모의 각오가 전해질 때 자녀들도 이 허망한 시대를 잘 살아내지 않을까? 광야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듯이, 푸른 솔처럼 동료들과 풋풋하게 말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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