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이 채 못 된 2009년 초, 필자는 ‘이명박 실패는 역사의 필연’이란 칼럼을 쓴 바 있다.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인류 역사는 길게 보아 인권 신장, 민주적 가치의 보편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쪽으로 발전해 가는데, 그 반대의 길로 치닫는 이명박 정부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4·11 총선의 결과를 놓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총선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 끝났다고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총선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어려울 때일수록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제 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끝났으니 가던 길 그대로 가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반면, 총선 이후 이 정부의 각종 비리와 의혹에 대한 청문회 등을 열겠다고 벼르던 야권은 완전히 코가 빠져 있다. 총선 압승에 기대를 걸었던 방송파업 노동자들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이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야권연대는 이번 총선에서 정권심판에 올인했으나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런 결과가 곧바로 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해석될 여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일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은 제대로 된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물론 야권연대가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긴 했다. 반면, 국민이 원하는 구체적인 비전 제시에는 소홀했다. 그 전략은 실패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여당은 변화와 쇄신을 앞세워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정권심판론에 맞대응하지 않고 회피한 것이다. 그 전략은 성공했다. 이번 총선은 이런 선거 전략의 차이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정권심판론’에 대해 국민이 외면했을 뿐이지 ‘정권심판’ 자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이겼는데 그걸로 모든 심판은 끝난 거 아니냐는 논리다. 어떤 정부의 임기 중 치러지는 선거는 궁극적으로 그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이런 일반론으로 해석하기 힘든 구도였다. 여권은 이번 총선을 미래 권력인 박근혜 비대위원장 주도로 치렀다. ‘과거의 이명박’보다 ‘미래의 박근혜’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요구한 것이다. 야권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등치시키려 노력했지만 국민에게 외면당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치러진 선거였지만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의미가 사실상 실종돼 버린 기이한 총선이 된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지난 4년간 보여준 비민주적·반생태적 행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심판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국가기구를 사유화하고 개인의 인권을 짓밟은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가장 큰 실책이다. 종편 특혜와, 언론의 공적 기능을 마비시킨 방송장악도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린 4대강 사업의 추진 경위와 그 결과도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최소한 이 세 가지는 국민적 심판을 분명히 내리고 가야 할 사안이다.
야권의 총선 패배로 이에 대한 심판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추진하려 해도 여당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건너뛰고 갈 수는 없다. 이는 야권이 구체적인 비전 제시로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여당도 마냥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그동안 표방한 변화와 쇄신의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더 큰 심판의 장인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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