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부당한 정부는 정당한 연예인을 두려워한다. 정당한 누구라도 두려워하지만, 많은 대중의 가슴에 호소하며 정의로움에 너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연예인은 더욱 두려워한다. 극악한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하던 남아프리카 정부한텐 마마 아프리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미리엄 마케바가 그 대상이었다.
마케바는 출신 지역에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점차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국제적 명성의 계기는 <돌아오라, 아프리카>라는 인종차별 반대 다큐멘터리에 단역으로 출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받았다. 영국 여행에서 만난 해리 벨라폰테의 도움으로 1959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며 성공을 거둔 마케바는 이듬해에 모친상을 당해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정부는 여권을 취소시켰다. 이럴 줄 알았다면 떠나지 않았으리라며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1963년 유엔에서 행한 인종차별 사례에 대한 증언에 보복하듯 남아프리카 정부는 시민권을 박탈했다. 그는 국적 없는 여인이 되었으나 동시에 세계시민이 되었다. 열 나라에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고, 아홉 국가에서 발행한 여권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흑인 과격파 운동가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결혼한 뒤에는 미국에서도 음반 계약과 공연이 취소되었다. 기니로 거처를 옮겼어도 활동은 계속했다. 1974년에는 유엔에서 두 번째 증언을 했다.
그는 1988년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넬슨 만델라의 70세 생일 축하 공연에 참여하여 석방을 촉구했다. 방송으로 관람한 6억 청중의 압력에 몰린 남아프리카 정부는 결국 만델라를 석방했다. 이후 4개월 만에 마케바는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마피아 조직에 반대하는 작가를 후원하는 이탈리아의 공연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연예인에 대한 사찰은 정권의 두려움의 표출일 뿐이다. 김제동, 김미화 쫄지 말기를.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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