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명박 정권은 하도 상식을 벗어난 일을 많이 한 정권이라 앞으로 열흘 동안 또 무슨 사건이 터질지 모르지만, 만약 이대로만 간다면 이번 4·11 총선의 최대 승자는 재벌과 이명박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몇달 전만 해도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자 여야는 경쟁적으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강력히 추진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해서도 단단히 심판할 기세였다.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드네, 당명을 바꾸네,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네, 인적 쇄신을 하네, 심지어는 이명박 대통령을 탈당시키네 마네 하면서 모든 것을 다 바꿀 기세였다. 야당도 경제민주화특위를 만들고 재벌개혁 방안을 만드네, 혁신을 내세우며 야권 통합정당을 만드네 하면서 무기력한 야당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약속대로 이를 실천하리라 기대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새누리당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보면 개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상유지만 하겠다는 수준이다. 지난 4년간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친부자 정책 덕으로 얻은 이익을 일부나마 원상회복시키겠다는 구조적 교정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친재벌·친이명박 인사들이 여럿 공천을 받는 등 인적 쇄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핵심 주도 인물로 평가받는 한 비대위원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이용만 당하고 중도하차하였다. 새누리당은 ‘친재벌적’ 재벌개혁과 ‘반민주적’ 경제민주화를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그래도 새누리당보다는 조금 낫지만 크게 나을 것도 없는 것 같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개혁적 인물의 공천은 명색만 유지할 정도로 극히 일부에 불과한 등 실천의지를 확실히 보이지 못하였다.
여야 양대 정당, 특히 양당의 수뇌부들이 말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쇄신을 합네, 개혁을 합네, 민생을 챙기네 하지만 실은 자기들의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하다. 국민들의 실망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또다시 ‘하는 척’만 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정치시장의 독과점화 때문이다. 거대 여야 양당의 행태를 보면 동네에 두 곳밖에 없는 슈퍼의 암묵적 담합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너희들이 우리 아니면 어디서 생필품을 사겠느냐 하는 식의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 민주화가 큰 진전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정치시장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정치시장이 양대 정당의 독과점 구조로 되어 있으니 정치가 99%의 국민을 외면해도 도태되지 않는 것이다. 독과점 재벌기업이 소비자를 착취해도 소비자들이 독과점 재벌기업의 상품을 비싼 값에라도 안 살 수 없듯이, 독과점 정치시장에서도 유권자들이 달리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양대 기득권 정당은, 특히 기득권 정당 내의 기득권 수뇌부층은 99% 정치 소비자를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시장에 높은 진입장벽이 쳐져 있어 민주화된 경쟁시장의 구조가 형성되지 않으니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킬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독과점 기업이나 독과점 정당이나 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그 폐해를 없앨 수 있다. 정치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깨야 정치를 통해 99% 국민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양대 정당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양대 정당의 수뇌부가 정당 내부에서 주무르는 기득권 독점도 깨야 한다. 그럼 지금 당장 정치 소비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어느 후보가 진정 99% 국민의 편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성실히 수행할지 세심히 살펴보고 뽑는 일이다. 말뚝이라도 우리 편이면 무조건 찍는다는 맹목적인 정당 충성심은 정치권의 독과점 구조만 강화시킬 뿐이다. 정치 소비행위를 포기하는 것도 정치권의 기득권과 독과점 구조를 도와주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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