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런던, 1802>라는 소네트에서 영국인들이 이기심에 빠져 내적인 행복을 잃어버리고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1802년의 런던에 밀턴이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예의와 미덕과 자유와 힘을 돌려주기 바란다고 청한다. 물론 에덴동산의 추방을 다룬 서사시 <실낙원>으로 대시인의 칭호를 얻은 바로 그 존 밀턴을 가리킨다.
17세기 영국은 정치와 종교가 함께 엮여 혁명과 내전과 반동으로 점철된 역사를 보여준다. 밀턴은 초지일관 영국의 의회주의가 진정한 신앙인 프로테스탄트를 통해 이루어지기 바랐다. 밀턴은 가톨릭을 악과 동일시했다. 외국인 교황을 우두머리로 받들며, 외적인 요식 행위만을 강조할 뿐 평신도의 영적인 권리와 자유를 파괴시킨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톨릭처럼 주교제를 유지하는 영국국교회도 가톨릭의 음모가 영국에 침투한 것으로 봤다. 그는 의회주의와 종교적 순수성을 표방한 크롬웰의 청교도 공화국을 위해 꿋꿋이 싸웠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밀턴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다. 정당하게 성립된 의회라도 그 자유를 수호하지 못하면 국민을 열등하게 만들어 역사를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워즈워스는 자유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킨 밀턴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2012년, 서울. 이곳으로 밀턴을 불러오고 싶다. 청교도 전쟁이 한창이던 1644년 밀턴은 <아레오파기티카>라는 팸플릿을 발표했다. 거기에서 그는 출판물의 사전 검열에 반대하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웅변을 펼쳤다. “다른 모든 자유들보다도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토의할 자유를 달라.” 그로부터 대가의 “소중한 생명의 피”인 좋은 책이 태어난다. 언론과 표현의 탄압은 그 생명의 힘을 말살시켜 역사를 퇴보시킨다는 것이다. 썩어 들어가는 이 땅의 언론에 예의와 미덕과 자유와 힘이 되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일단 예의만이라도.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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