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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박근혜의 변역과 불역

등록 2012-03-26 19:26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중국 주나라 때 점치는 책이었던 <주역>은 동양철학의 오묘한 진리가 담겨 있다. 역(易)의 뜻풀이부터 그렇다. 중국 후한시대 학자인 정현은 역이 모순된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갖는다고 설명했다. 즉, 우주의 삼라만상은 한순간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변역(變易)의 뜻과, 그처럼 무궁무진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불역(不易)의 뜻이 함께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성백효 역주, <주역전의>)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은 단지 자연현상뿐 아니라 인간 세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다.

4·11 총선을 앞두고 출마자들이 모두 변화를 얘기한다. 바뀐 세상에 맞추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존을 위해서도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는 또 변하지 않는 것도 함께 들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그 변화의 온전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총선 국면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이는 단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는 침몰 직전의 한나라당을 떠안아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변화의 선두에 섰다. 당의 정강정책도 모조리 뜯어고쳤다.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세운 뒤 복지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표방했다.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시의적절한 변화였다. 그 덕에 박근혜 대세론이 다시 살아나고 새누리당의 총선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자연의 섭리인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박 위원장의 장점이 한껏 돋보였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변화 속에는 또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주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하던 날, 그의 양쪽에는 눈에 익은 두 얼굴이 보였다. 김용환·서청원 선대위 고문이 그들이다. 김용환 고문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 그분의 철학과 리더십 밑에서 1978년 12월22일 재무부 장관직을 사임할 때까지 18년간을” 박 대통령과 함께했던 ‘원조 친박’ 인사다.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낸 서청원 고문은 대표적인 친박 보수정치인이다. 그들에 대한 박 위원장의 변치 않는 애정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념적인 면에서도 변치 않는 게 있다. 새누리당은 야권연대의 파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색깔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가장 큰 이득을 챙길 사람이 박 위원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변화의 화두로 내세우면서도 이번 총선에서는 친재벌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다.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면서도 실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면면을 보면 서민적인 인물은 찾기 어렵다.

결국 박 위원장은 국민의 요구에 순응하는 의미있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변치 않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변역 속의 불역, 그것은 수구, 색깔론, 친재벌로 요약할 수 있다.

박 위원장의 변역과 불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재벌개혁론자로 알려진 김종인 교수다. 김 교수는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하면서 박 위원장이 ‘창조적 파괴’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주 비대위원을 사퇴하며 “박 위원장의 말을 확실히 믿고 비대위에 합류했는데 막상 들어와 이야기해 보니 강도가 상당히 약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약 김 교수가 박 위원장의 변역과 불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대위에 참여했다면 세상 이치를 보는 안목이 모자랐던 것이고, 그런 줄 알면서도 합류했다면 ‘양지만 지향하는’ 노정객의 노회한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4·11 총선을 향한 본격전인 선거전의 막이 올랐다. 후보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요란스런 변화의 몸짓을 보인다. 진정한 변역의 모습도 있고, 또 그 속에는 불역도 숨어 있을 것이다. 불역은 현란한 변역의 모습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변역에 이끌려 후보를 선택할 경우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변역 속에 불역이 있다는 주역의 원리를 한번쯤 되새겨 볼 때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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