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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교회가 종교는 아니다

등록 2012-03-21 19:30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터키의 해적들에게 나포되어 튀니스에 노예로 팔려가서도 주인을 개종시키고 탈출했던 성직자 뱅상 드폴은 자선 행위로 명성 높다. 불우한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유력 가문의 도움을 얻어 봉사 규모를 확대시켰고, 귀부인들도 단체를 만들어 봉사에 나서게 했다. 1625년에 만든 선교 수도회는 훗날 나사로회가 되었다. 이런 공로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드폴의 생애는 영화 <무슈 뱅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가 19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이제는 140여개 국가에서 활동한다.

소르본의 법학도 프레데릭 오자남이란 인물이 그 단체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오자남은 학자로도 업적을 남겨 단테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뒤 리옹과 소르본에서 법학과 외국 문학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그의 가장 큰 학문적 기여는 따로 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에 가톨릭교회는 말 그대로 말살되었다. 그 시대가 끝난 뒤 교회는 복구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교회가 어떻게 수용하는가의 문제는 남았다. 교회 내의 보수주의자들은 혁명의 구호였던 자유·평등·박애를 전적으로 거부하며 반동적인 기득권 편을 들었다. 반면 오자남은 그 이상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며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택해야 할 태도라고 주장했다.

그의 대표적 이론 하나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갖는다. 그것은 교회의 적이 모두 종교의 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선 정치에 개입하여 기득권을 옹호한 성직자들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오자남은 그들에 반대한다고 신앙심이 주는 게 아니라고 설파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교회가 목회자의 이름과 거의 동일시되며, 외형적인 교회의 성장을 신앙심의 발로인 것처럼 호도하고, 그렇게 ‘세속적’ 권력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리고 이용당하는 자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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