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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등록 2012-03-07 19:32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860년대 부모님에게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들으며 잠에 들던 영국 소녀가 있었다. 세 살부터 책을 읽던 독서광인 그는 토머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가 평생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책에서 얻은 것 외엔 별로 없었다.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했지만 여자들은 장래의 남편이 필요로 하는 솜씨만 기르면 된다고 믿었던 부모는 딸들에게 “가정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정도에 그쳤다. 5남5녀의 장녀였던 그는 남자 형제들이 누리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 소녀 에밀린 굴든이 훗날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로 자라나게 된다.

스무 살의 에밀린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성의 참정권을 옹호하던 마흔넷의 배리스터(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와 결혼했다. 10년 사이에 다섯명의 자녀를 가졌으면서도 에밀린은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하려는 대외활동에 분주했고, 리처드는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하인을 고용하면서 에밀린을 도왔다. 아내가 ‘가사 행위의 기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1898년 남편이 사망한 뒤 에밀린은 ‘여성사회정치연합’을 결성했다. 그것은 여성의 투표권 쟁취를 목표로 한 단체로서, “말이 아닌 행동”을 구호로 삼았다. 에밀린의 딸들이 큰 몫을 했던 이 단체는 창문을 깨뜨리거나 경찰관을 공격하는 등 과격한 행동에 나섰고, 구금 뒤에는 단식투쟁을 벌였다. 정당 내부에서는 목적을 이루기 어렵기에 제도권 밖의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래서 비판도 받고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에밀린은 1999년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100인에 꼽혔다. 1918년 30살 이상의 여성에게 영국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이 주어졌고, 그에 기여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3월8일은 제정된 지 100년이 갓 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48년에야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곳에서 이날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기를 바라며.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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