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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민주당 재벌개혁 누가 하나

등록 2012-03-05 19:22수정 2012-03-06 10:19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직업관료 출신 정치인한테서 개혁성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정책과 상반된 정책을 버젓이 추진하는 게 관료다. 그러다 보니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장차관 등 고위직까지 지낸 관료들의 속성은 대부분 뼛속까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관료 출신의 재공천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특히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실현을 제1 목표로 설정한 민주당이 어떻게 개혁과 거리가 먼 경제관료 출신을 재공천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그 논란의 한가운데 김진표 원내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지낸 대표적인 경제관료 출신이다.

정치권에서 관료를 영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 출신의 부족한 행정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융과 조세, 예산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제 분야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경제관료 출신들의 전문성은 정당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관료 출신 정치인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관료 출신 정치인이 이런 역할을 넘어 당의 주도권을 쥐고, 당이 나아갈 방향까지 좌지우지하려 할 경우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비화한다. 이른바 당의 정체성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다. 김진표 의원이 초점이 된 것은 그가 원내대표로서 민주당의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물론 민주당 안에는 김진표 대표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집권을 위해서는 김 대표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재집권의 꿈에 부푼 민주당 내부 시각일 뿐이다. 이번 4·11 총선을 통해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국민에게 이런 주장이 먹혀들 리 없다. 경제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이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민주당이 이번 4·11 총선 이후 경제민주화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면 이런 고위 경제관료 출신들의 공천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로는 재벌개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개혁성이 부족한 경제관료들을 공천한다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민주당 내 일부 경제관료 출신들은 새누리당에 있어도 전혀 어색할 게 없을 정도로 보수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총선 이후 민주당이 재벌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 한다면 공천 과정에서 이를 주도할 인물들을 적극 발굴하고 영입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겨우 눈에 띄는 게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인 유종일 교수의 전략공천 정도다. 하지만 재벌개혁은 상징적인 인물 한두 명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개혁 성향의 인물 몇몇이 정부에 들어갔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하나의 팀이 되어 손발을 맞출 정도의 인원수가 안 되면 재벌과 관료들의 저항을 견뎌내기 힘들다. ‘재벌개혁 드림팀’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들을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공천해 재벌개혁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일관되게 재벌개혁을 외쳐온 인물들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벌개혁 목소리를 높이다가 밀려난 사람들도 있고, 삼성과 정면으로 맞섰던 인사들도 있다.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에 당운을 걸겠다면 이들을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공천해 재벌개혁의 전면에 나서게 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추진할 사람도 없이 말로만 재벌개혁을 외친다면 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서 재벌개혁을 소신껏 밀어붙일 인물 영입에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민주당의 재벌개혁 의지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수차례 재벌개혁 움직임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확고한 개혁 추진 주체가 없었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재벌개혁을 추진할 주도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재벌개혁은 또다시 물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지금 그런 길로 가고 있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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