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벌거벗은 영주 부인

등록 2012-02-15 19:42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영국 중부에 유서 깊은 도시 코번트리가 있다. 이 도시와 관련된 역사나 전설도 많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저자 한 바퀴를 돌았다는 설화다. 코번트리 시민들은 영주의 가혹한 과세로 고통받았다. 아내인 고다이바 부인은 세금을 감면해주라고 여러 차례 간원했지만 남편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이어지는 아내의 탄원에 지친 남편은 만일 아내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의 큰길을 통과한다면 요청을 수락한다고 제안했다. 뜻이 그다지 고결하다면 원초의 순백한 상태로 나서보라는 것이었다.

설마 그 일을 할까 낸 꾀였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약속을 지킨다는 다짐을 남편에게 받아낸 뒤 포고령을 내렸다. 자신이 그 일을 행하는 동안 모두 창문에 셔터를 걸고 집안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톰이라는 이름의 재단사 하나만이 셔터에 구멍을 뚫고 훔쳐봤다. 그 순간 맹인이 되었다는 전설 속의 그 톰은 관음증 환자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결국 남편은 아내와 약속을 지켜 과도한 세금을 금지시켰다 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전설을 풍요제와 관련한 민간 신앙에 결부시킨다. 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장 거리에서 이 일이 있었다거나,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참회하기 위해 거리를 걸었던 일이 미화된 것이라고 논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 논란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학자들의 버릇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기록으로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평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지배자 부인의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레 전해오는 감동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나체 시위가 도처에서 비폭력적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도 정신적으로 일맥상통한다.

대통령은 할 일이 너무도 많아 비판을 들을 시간이 없다고 옹호해주는 그 아내의 자세와는 너무도 다르기에 더욱 돋보이는 일화다. 옛 영어에서 ‘고다이바’는 ‘신이 주신 선물’을 뜻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장남 이맹희가 동생 이건희에 밀린 사연은…
조중동 출신 ‘MB의 남자들’ 몰락한 까닭은
“동아대 한국사서 근현대사 삭제, 뉴라이트 쪽 교수가 요구”
“민주당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지만…” 남 텃밭의 괴로움
재벌 총수 사전에 실형은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2.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3.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증오의 시대, 기적의 순간들 [젠더 프리즘] 4.

증오의 시대, 기적의 순간들 [젠더 프리즘]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5.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