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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칼레의 시민

등록 2012-02-08 19:49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중세 말의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는 백년전쟁 초기의 감동적인 일화를 전한다. 조각가 로댕도 자극받아 <칼레의 시민>이란 작품을 남겼다.

1347년 칼레시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군대에 포위되어 마침내 항복하게 되었다. 시장 비엔은 피해는 최소로 줄이되 존엄마저 지키려고 적장들과 담판을 벌였다. “우리는 프랑스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이곳을 명예롭게 지켰소. 온 힘을 다했으나, 먹을 것조차 떨어졌소. 당신들 국왕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 죽습니다. 도시 전체를 바치니 우리 모두 무사히 떠나도록 해주시오.”

늠름한 태도에 감동받은 영국의 장군들은 왕에게 그의 말을 호의적으로 전했다. 왕은 포위전을 하는 동안 큰 피해를 안긴 칼레시에 큰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는 가혹한 조건을 걸었다. 도시의 유지 여섯이 삭발을 하고 목은 밧줄로 묶은 채 거리의 모든 열쇠를 갖고 맨발로 영국 왕 앞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칼레 시민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가장 부자였던 사람이 다른 시민들을 구할 수 있다면 나서겠다고 자원했다. 곧 이웃의 존경을 받던 다른 사람이 따라나섰고, 여섯 명이 채워졌다. 그들이 영국 왕 앞으로 출두할 때 모든 시민이 울며 뒤따랐다.

영국군 진지 앞에 서자 왕과 장군들은 물론 임신 중인 왕비까지 도열해 그 광경을 봤다. 왕이 처형 명령을 내렸다. 장군들이 나서 그들을 처형하면 국왕의 명성에 누가 된다고 구원을 간원했다.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왕비 필리파가 나섰다. “왕이시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탁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겸허히 청하오니, 성모 마리아와 당신이 제게 잉태시킨 사랑의 이름으로 저 여섯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잠시 침묵을 지키던 왕이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왕비에게 그대의 뜻대로 하라고 말했다.

희생을 자청한 지도층, 왕에게 간청한 장군들과 왕비, 그들의 진의를 받아들인 왕. 그 모두가 우리에겐 부러운 귀감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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