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보카치오는 단테의 <신곡>에 대비되는 ‘인곡’으로 명성 높은 <데카메론>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단테·페트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을 이끌었다. 단테에 대한 존경은 <신곡>에 대한 해설서와 전기로 표현했다. 페트라르카와는 제자로서, 친구로서 교감을 이루며 도움을 받았다. 작가로서뿐 아니라 고대 필사본 수집가로서도 그는 고대를 부흥시키려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구현했다.
그는 유명한 여인들에 대한 열전을 낼 정도로 여인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 여인들은 지옥 같은 세상을 교묘한 처세술로 영위하며 즐기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여인들에 대한 그러한 관점은 1348년 피렌체를 휩쓴 페스트로부터 도피한 남자 3명과 여자 7명이 나눈 이야기라는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여인들로도 이어진다. 대체로 그 여인들에게는 애인이 있다. 우둔한 남편을 비웃듯 그들은 불륜을 벌인다. 낌새를 챈 남편의 추궁에 대해서는 기지를 발휘하고 영리한 논리를 이용하여 오히려 남편을 타박하며 궁지로 몰아넣는다. ‘인간 정신의 재발견’과 ‘현세의 긍정’이라는 르네상스에 대한 정의의 한 측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것이 근대의 여명을 비춘 보카치오의 한 면모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 대하소설 <토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연민의 정을 느끼는 귀녀가 느닷없이 떠오른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인죄를 범했어도, 단지 몸뚱이 하나와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양반 중심, 남성 중심의 체제에 저항하려 했던 귀녀가 이상하게도 르네상스 시대의 귀부인들 모습과 중첩되는 것이다. 그 귀부인들은 처벌을 면할 뿐 아니라 칭찬까지 받아가며 애정 행각을 지속한다. 귀녀는 패륜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형장에서 삶을 마감한다.
아직도 이 땅에서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구조적 틀 속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귀녀의 후예들이 많을 것 같아 드는 연상 작용일 게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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