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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희망은 성밖에 있다 / 이원재

등록 2012-01-25 19:17수정 2013-05-16 16:37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재벌 2세들은 빵집에나 진출하고…
대기업들은 자본주의 기업의 본분인
‘자본축적’ 임무조차 내려놓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자선만으로는 세계의 문제들을 풀지 못할 것이다”로 시작하는 칼럼을 썼다. 자본주의 자체가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사회 진보를 동시에 고려하며 움직여야 세계의 산적한 문제들이 풀려나간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그 핵심인 ‘이윤 극대화를 통한 자본축적’이라는 동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공장을 지으면서 학교를 함께 짓고 문화유산을 재건하는 일을 함께 하는 장면에서 클린턴은 교훈을 찾는다. 퇴임 후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다 결국 다다른 생각일 것이다.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작된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던져졌다. 이 포럼 설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현재 자본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포럼은 닷새 동안 ‘자본주의는 작동하는 것일까’를 놓고 고민한다.

현재 자본주의가 비판받는 것은, 경제 성장과 부의 양적 증대는 달성했지만 그 부가 1%의 성안 사람들에게서만 맴돌기 때문이다. 그 부는 99%의 성밖 사람들에게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또한 성밖 사람들이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사망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찬을 나누며 했다는 이야기 속에 진실이 숨어 있다. 현재 전량 외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해 일자리를 늘릴 수 없겠느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잡스는 “없다”고 대답했다. 인건비도 중요했지만, 디자인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하면 자정에도 수천명을 불러내 일을 시킬 수 있는 중국의 노동환경이 더 중요했다. 속도와 유연성은 애플의 생명이다. 미국에서는 밤에 사람들을 불러내 일 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삶의 질’은 기업 경쟁력과 정확히 상충된다. 애플의 딜레마이면서 자본주의의 딜레마다. 사상 초유의 분기 순이익 15조원은 그 딜레마를 밟고 서 있다.

국내 대기업을 보면 더 큰 한숨이 나온다. 글로벌 경쟁을 한다며 온갖 특혜를 받더니, 그 자원으로 동네 경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대기업과 재벌가 2세들의 빵집 진출과 함께 동네빵집은 자취를 감췄다. 대형마트가 골목 상권까지 진출하면서 전통시장은 빠르게 줄어든다. 반면 신기술이나 고정자산 투자는 위험하니 회피한다. 대기업들은 자본주의 기업 본연의 임무인 ‘자본축적’ 임무조차 내려놓았다.

희망이 있을까? 그래도 아이티에서 사업과 사회인프라에 함께 투자하는 기업을 언급한 클린턴의 글은 힌트를 준다. 바로 ‘사명이 다른 기업’에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성안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사회적 사명을 받아들여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클린턴의 희망은 전혀 다른 곳에서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처음부터 사명 자체가 다른 조직들에서다. 말하자면 성밖에서 경제활동을 펼치는 곳들이다.

다행히 싹이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올해 12월이면 발효된다.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기업을 설립해 사업하는 일이 쉬워지는 것이다. 서울시는 사회적 경제와 관련한 민간협의체를 구성중이다. 여기서는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과, 지역공동체에 기반한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새로운 경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일들이다. 만일 자본주의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 싹은 성밖에서 트지 않을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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