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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말레이에서 온 소포

등록 2012-01-18 19:33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858년 찰스 다윈에게 동남아로부터 한 편의 논문이 배달되었다. 발신자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레이 제도에서 채집한 곤충 표본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인물로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말레이 반도에서 생물체의 다양성을 지배하는 규칙을 찾아 자연의 신비를 밝히려 했다. 런던의 학계에 연고가 없던 월리스가 간접적으로 알며 존경하던 다윈에게 자신이 쓴 논문을 보낸 것이다.

다윈은 놀랐다. 그는 생물의 종은 창조되었고 거기에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그릇된’ 창조론을 깰 근거를 20여년에 걸쳐 준비해왔지만 아직은 자신의 논리를 체계화시키지 못했는데, 월리스의 논문에 진화론의 기본적인 골격이 간략하나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논문이 먼저 발표되면 수십년에 걸친 다윈의 작업의 독창성이 위협받는다. 다윈은 기로에 섰다. 진화론을 먼저 주장한 사람이 월리스라고 인정하면 공들여 쌓아온 업적이 물거품이 된다. 반면 자신이 먼저 그 이론을 내세웠다고 주장하면 학문적 정직성을 배신한다. 따라서 다윈은 진화론 최초의 발표자라는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월리스의 명예를 지켜줄 방식을 찾아야 했다.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과 같은 친구들이 나서 다윈을 구할 방편을 찾았다.

1858년 7월1일 명성 높은 런던의 린네 학회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다윈의 글이 먼저, 월리스의 글이 마지막으로 발표되었다. 사소한 속임수였지만, 사람들은 다윈의 글이 먼저 작성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순서나 발표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진화론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던 다윈이 월리스 논문의 결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과로 만들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겸허한 인간 월리스는 진화론의 선구자로 다윈을 인정하며 변함없는 존경심을 보였고, 다윈은 월리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보상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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