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재벌개혁이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새로 출범한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재벌개혁을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강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여건은 어느 때보다 좋다. ‘1 대 99’ 사회가 상징하듯 절대다수의 삶이 피폐해지는 가운데 재벌들은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에 공분을 느끼는 많은 국민의 지원을 지렛대 삼아 재벌개혁을 관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쉽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재벌개혁이 숱하게 거론됐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왔다. 재벌 총수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화되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는 오히려 심화했다. 말만 요란했지 그동안의 재벌개혁은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한 셈이다.
외환위기를 발판 삼아 가장 강력하게 재벌개혁을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정부만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재벌개혁을 추진했던 정부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부터 재벌개혁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이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재벌개혁은 재무구조 개선, 변칙상속 차단 등 ‘5+3 원칙’에 따라 추진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재벌들이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지배구조는 거의 개선되지 않은 채 재무적으로는 더욱 건실해지면서 강력한 재벌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재벌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재벌 그 자체였다.
왜 그리됐을까. 재벌개혁의 목표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개혁의 목표를 ‘재벌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고, 재벌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삼았다. 재벌 ‘개혁’이란 결국 재벌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과 취약점을 개선해줌으로써 더욱 튼실한 재벌로 만들어주겠다는 말과 동의어가 돼 버렸다.
추진 방식도 너무 ‘신사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시장경제 원칙을 유난히 강조했다. 정부는 원칙만 만든 뒤 재벌들이 자율적으로 이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을 하고, 정부는 재벌들이 제대로 하는지 철저히 감독만 한다는 방침이었다. 백번 옳은 방식이지만 그런 원칙을 지킬 의사가 전혀 없던 재벌들은 김 대통령의 이런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 눈치껏 저항하고, 적당히 들어주면서 자신들의 실속은 꼼꼼히 챙겼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재벌개혁의 목표를 분명하고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재벌개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이 지금 같은 제왕적인 일인 총수 지배체제를 타파하고, 과도한 독점과 불공정 거래를 막아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현행 재벌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돼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몇몇 규제장치를 새로 도입한다고 재벌의 근본적인 폐해가 고쳐지지 않는다. 더욱이 ‘개혁’이란 말에 얽매여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려 할 경우 재벌들의 내성만 키워줄 뿐 아니라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재벌을 더욱 경쟁력 있는, 한층 진화한 재벌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추진 방식도 과거와 달리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 재벌의 행태는 시장경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탐욕적이고 천민적이다. 그런 괴물을 해체하는 데 시장경제 원칙만 강조해서는 그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하게 되면 재벌들은 반시장적이라며 저항하고, 한쪽에서는 ‘빨갱이 경제’ 하자는 것이냐며 온갖 시비를 걸 것이다. 이런 비난과 저항이 두려워 움츠러들 경우 그 결과는 보나 마나다. 재벌개혁이 성공하려면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재벌개혁을 한다는 변죽만 울리다가 흐지부지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정치권과 관료, 재벌 간의 유착관계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재벌 없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재벌을 감싸고도는 경제관료, 재벌한테서 돈을 끌어와야 생명을 이어가는 정치권, 돈 힘으로 정치권과 관료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 이들을 얽어매고 있는 끈끈한 고리를 정치권이 먼저 끊지 못하면 재벌개혁은 요원하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추진 방식도 과거와 달리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 재벌의 행태는 시장경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탐욕적이고 천민적이다. 그런 괴물을 해체하는 데 시장경제 원칙만 강조해서는 그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하게 되면 재벌들은 반시장적이라며 저항하고, 한쪽에서는 ‘빨갱이 경제’ 하자는 것이냐며 온갖 시비를 걸 것이다. 이런 비난과 저항이 두려워 움츠러들 경우 그 결과는 보나 마나다. 재벌개혁이 성공하려면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재벌개혁을 한다는 변죽만 울리다가 흐지부지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정치권과 관료, 재벌 간의 유착관계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재벌 없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재벌을 감싸고도는 경제관료, 재벌한테서 돈을 끌어와야 생명을 이어가는 정치권, 돈 힘으로 정치권과 관료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 이들을 얽어매고 있는 끈끈한 고리를 정치권이 먼저 끊지 못하면 재벌개혁은 요원하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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