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존 로크는 풍파 심한 영국의 17세기를 몸으로 겪었다. 영국의 격랑이 명예혁명으로 진정되고 입헌군주국의 면모를 갖추면서 로크는 권력 분립과 법치국가 등 그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하나 로크의 주장은 그 이전으로 소급된다. 인간의 정신은 백지장 같아서 거기에 경험이 그림을 그린다는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정부론>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그 책은 이론서로 보이지만, 큰 설득력을 갖고 쉽게 읽힌다. 그런데 특히 독재와 그 청산에 관한 결론 부분은 마치 보고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 현실과 잘 들어맞는다. 그의 주장을 잘 배열만 해도 세상 보는 안목과 행동의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통치자가 법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규칙으로 만들고, 국민의 재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야심과 보복과 질투 따위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 독재다. 법이 멈추는 곳에서 독재가 시작한다. 부당하고 불법적인 권력에 대해서는 반대‘해야만’ 한다. 인간이 사회에 진입한 이유는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법과 규칙은 사회 모든 구성원의 재산을 지키는 담장이다. 사람들로부터 재산을 임의적으로 빼앗아가려는 자는 국민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이며, 따라서 복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에 대한 공동의 도피처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제공한 것이다. 그것은 반역인가? 아니다. 도적과 해적에 저항하는 것이 무질서와 유혈을 초래할까 두려워하여 저항하지 않는다면 폭력에 바탕을 둔 평화만이 남을 것이다. 양이 저항도 하지 않고 늑대에게 목을 내놓고 찢기는 것이 바람직한 평화인가? 다수의 지배라도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독재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703년 로크는 “재산권에 대해 <정부론>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한 책은 없다”고 말했다. 자화자찬이라 할지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로크에게 혁명은 권리를 넘어서는 의무였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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