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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두 거장에게 바치는 헌사

등록 2012-01-04 19:20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1961년 11월13일 백악관의 동관에 멘델스존의 피아노 삼중주 선율이 흘렀다. 그렇게 시작한 연주회는 <새들의 노래>로 끝을 맺었다. 그것은 카탈루냐의 민요를 개작한 것으로서 첼로를 맡았던 카살스와 그의 고향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13살에 발견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를 연습하여 25살에 연주하고 60살에 이르러서야 녹음했던 이 첼리스트는 가난한 사람들도 음악의 향기에 도취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던 맑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프랑코의 집권에 맞서 공화주의자들의 정부를 열렬히 옹호했던 카살스는 그들이 패배하자 조국 에스파냐를 떠나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고향을 떠났다. 더 나아가 프랑코의 정부를 인정하는 국가에서도 공연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의 공연은 유일한 예외로서 인권을 수호한다고 믿었던 케네디 대통령에게 프랑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기회라 생각하여 이루어진 일이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열살 때 아버지로부터 첼로를 배웠다. 아버지가 카살스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도 간접적인 제자라 할 수 있을까.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그의 행동도 연주만큼이나 심금을 울린다. 그는 국경이 없는 예술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싸웠다. 스승 쇼스타코비치가 교수직을 박탈당하자 항의의 표시로 음악학교에서 자퇴했고, 박해받던 솔제니친을 숨겨주었으며, 그 결과 스스로도 소비에트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었다.

이 두 거장은 음악으로 얻은 명성을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데 사용했다. 그뿐 아니라 음악의 혜택이 미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려는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카탈루냐의 새들은 ‘피스, 피스’ 하고 평화를 염원하며 운다던 카살스는 스스로를 음악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로스트로포비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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