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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주변의 카프카

등록 2011-12-28 19:41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카프카에스크’라는 영어 단어가 만들어졌다. 독일어권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카프카 식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그 형용사는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때로는 무의미하고 방향을 상실한 실존의 상황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초현실적인 위협이 임박해오는 암울한 위기의식을 뜻하기도 하며, 때로는 강력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관료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실재를 표현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은 <성>, <소송>, <변신>과 같은 카프카의 작품이 전달하는 의미의 모호성 또는 다중성에서 비롯된다. 그에 따라 비평가들도 그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실존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의 이름표를 붙이기도 하고, 유대교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안경을 통해 작품의 내면을 보려 하기도 하며, 그의 작품은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추구를 알레고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까지 가세하여 그의 작품 세계는 생각보다 더 전복적이고 ‘즐거운’ 것이라고 해석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을 보면 그 모든 해석을 수용할 만큼 그의 언어에는 함의가 풍부했다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비평가는 카프카가 특히 영국과 미국의 독자들에게 초현실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그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법체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주장을 펼쳤다. 몽환적으로 보일 정도로 당혹스런 부조리의 세계가 사실은 당시 독일계 형사법정의 관례에 대한 정확한 묘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선 그것이 논란거리도 되지 못할 것 같다. 법, 즉 정의의 내부로 들어가려고 문 앞에서 평생을 지키고 있어도 결국 죽을 때까지 허락받지 못한 사람의 우화가 여기에선 실화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마침내 들어가게 된 곳은 법의 내부가 아니라 감옥의 내부였다. 정봉주 전 의원, 힘내시길!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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