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 사회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사업 면허’를
얻는 행위란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사업 면허’를
얻는 행위란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전략적’(strategic)인 단계를 넘어서 ‘변혁적’(transformational)인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게오르크 켈 유엔글로벌콤팩트 사무총장의 연설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도쿄에서 한국·중국·일본 기업과 전문가들이 모여 연 글로벌콤팩트 콘퍼런스의 핵심 메시지였다.
이 자리에서는 일본 대지진과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기업 사회책임경영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과거 사회책임경영은 기업이 이윤창출 활동을 마치고 나서, 남는 잉여를 사회와 나누는 것으로 생각됐다. 이것을 ‘자선적 사회책임경영’이라고 했다. 또 사업에 연관된 활동을 기획해 재무적 이익으로도 연결시키는 전략이 유행했다. 이는 ‘전략적 사회책임경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처럼 인류가 함께 대처해야 하는 환경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또 금융위기 이후 빈곤과 격차와 인권 침해와 실업 같은 사회적 재난도 위험수위까지 올라왔다. 이런 시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사회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사업 면허’를 얻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떠오른 것이다. 기업이 정부·시민사회와 함께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변혁적 사회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것은 그래서다.
한국 경제에는 지진 못지않은 재난이 임박했다. 신규 일자리는 올해 40만개가 창출됐지만 내년에는 28만개만 만들어진다. 20대 남성의 취업률은 지난 15년 동안 73%였는데, 지금 58%로 떨어졌다.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인 900조원 규모이고, 생계형 대출만도 250조원 규모다. 계층상승 희망은 줄었다. 일생 동안 노력해도 계층상승 가능성은 낮다는 한국인이 100명 중 59명이나 된다. 2년 만에 11명이나 늘었다.
기업이 좀더 잘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올해 사정은 매우 좋다. 추정 순이익은 18조원이 넘어, 처음으로 삼성그룹 순이익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크게 성장한 것은 외국 현지생산 판매다. 올해 3분기까지 159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 증가했다. 내수 판매는 그 3분의 1인 51만대였고, 증가율도 7.3%에 그친다. 국내생산 수출이 가장 증가율이 낮아서, 5.1%만 늘어난 84만대였다. 외국에서 많이 팔린다지만,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그 나라 공장에서 현지 노동자들을 고용해 생산한 것이다.
외국 공장을 잘 짓지 않던 삼성전자는 중국 현지에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같은 기기에 들어가는, 가장 유망한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세계 수요량의 30%가 중국에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앞으로 아이폰은 중국에서 만든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해 완성될 모양이다. 브랜드는 애플과 삼성전자이지만, 미국인과 한국인의 손을 거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국 노동자가 흘린 땀이 전세계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로 연결되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수출 신화는 이제 끝났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이제 글로벌 기업이다. 아무리 더 성장해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늘리기는 어렵다. ‘세금 내고 일자리 창출하는 게 기업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는 흘러간 옛노래다. 기업 성장과 사회 발전 사이의 고리는 어느 때보다도 약해졌다.
기업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을 도와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것은, 이제 남아서 베푸는 활동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펼칠 수 있는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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