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페르시아의 대부대가 그리스를 공격했다. 그들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소부대와 테르모필레에서 마주쳤다. 레오니다스의 군대는 300명의 스파르타인과 1100명의 동맹군이었다. 그곳은 그리스 본토로 들어갈 좁은 지협이라서 방어에 유리했다.
적군을 염탐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는 그들이 머리를 빗고 있다는 전갈을 듣고 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앞두면 머리를 단장한다는 진언을 듣고 놀랐다. 어쨌든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려면 거쳐야만 할 길목. 페르시아는 사흘 동안 공격을 감행했다. 스파르타군은 넓은 곳으로 나오지 않고 페르시아 군대를 유인하며 번번이 패배를 안겼다.
상금에 눈먼 그리스인의 제보로 페르시아군이 뒷길로 공격했다. 보고를 들은 스파르타 수뇌부는 회의를 벌였다. 후퇴인가, 결사항전인가? 레오니다스는 저항을, 즉 죽음을 택했다. 그는 동맹을 맺은 테스피아와 테베의 군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원하는 스파르타인도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300명의 스파르타 사람들은 함께 남기로 결의를 다졌다.
그들은 장렬하게 싸웠다. 수로 압도하던 페르시아 군대가 오히려 두려움에 떨었다. 스파르타 군대는 창이 부러지면 단검으로, 단검을 잃으면 맨손과 이빨로 싸웠다. 그러나 중과부적. 페르시아군에서 화살을 얼마나 쏴댔는지 햇빛이 가릴 정도였다. 그러자 한 스파르타 병사가 태연히 말했다. “그늘에서 싸우니 시원해서 좋군.”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최후는 장엄했고,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패배는 그리스 전체의 승리였다. 그들이 페르시아 군대를 막으며 지체시켰기에 그리스의 함대는 안전했고, 마침내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페르시아를 패배시킬 수 있었다. 그들을 기리는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주오/ 우리는 법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묻혔노라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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