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카를 만하임은 헝가리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영국으로 이주하여 생을 마감한 사회학자다. 엘리아스와 파노프스키에게 영향을 미치며 독일에서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하던 그는 1933년 나치의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이민하여 런던경제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그가 영국에 정착한 이후 영국과 미국의 학자들은 사회와 문화의 관련성에 대해 한층 예리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지식사회학의 개척자로도 알려져 있는 그의 대표작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이다. 제목이 가리키듯, 정치 이념과 이상사회의 관계를 다룬 이 책의 논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만하임은 ‘무정부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 ‘자유주의’로 이데올로기를 구분한다. 그 구분은 유토피아, 즉 이상사회의 시간적 위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급진주의자들은 이상사회가 가까운 미래에 있다고 믿기에 그것을 당장 실현시키려고 혁명과 같은 수단에 의존하려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먼 미래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이상향을 실현하려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현재가 잠정적으로나마 인간이 현실적으로 기대하고 정당하게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사회로 본다.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이상사회는 먼 옛날 황금시대에 존재했고, 이후 인류는 타락의 역사를 겪어왔다. 따라서 그들은 현재 제도의 정통성을 타파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일리 있는 구분이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회학적 구분이 통용되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이익에 배치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좌익에 빨갱이라는 통칭을 붙이며, 스스로는 보수를 자처한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만의 이상사회가 유토피아일 수 있는가? 거기에 보수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들은 권력과 금력을 장악하는 지배층이 되기에 앞서 천박함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최소한 사회학적 구분이 의미를 갖는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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