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그분들이 읽은 경제학 교과서와 내가 읽은 경제학 교과서가 정말 그렇게 다른 걸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는 그분들의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미 에프티에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려고 한다.
첫째, ‘경쟁촉진 효과’론과 ‘역경극복 디엔에이(DNA)’론을 보자. 이 상태로 한-미 에프티에이를 체결하면 우리가 지금 비교열위에 있는 차세대 미래산업을 모두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에프티에이가 우리 기업의 “저열한 생산성 제고에 가장 필요한 경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도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쟁의 승자와 패자가 국적을 달리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미국 국적의 승자가 내일 우리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미래산업을 키워주지도 않을 것이다. 통상경제학 교과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심지어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당당하게 뒤집기에 성공”했다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디엔에이를 비하”하지 말라고 꾸짖기까지 한다. 우리 국민은 어려움을 헤치고 성공을 이루어내는 특수한 디엔에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비록 지금 비교열위에 있다 하더라도 패자가 되어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도 우리 국민의 저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 자체는 매우 위험하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우리 농업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우리 농민의 디엔에이가 열등하기 때문이란 건가. 아니면 우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한다는 말인가. 황당하다.
둘째, 일자리 창출론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에프티에이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줄 거라 한다. 대단한 오판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로 득을 보는 산업은 대부분 우리나라 재벌들의 주력산업들이다. 문제는 재벌계열 대기업들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매우 낮다는 거다.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큰 중견·중소 미래기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내야 하는데 한-미 에프티에이로 이들이 어려워지면 이 대통령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
셋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보자. 이것은 자유무역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독소조항이다.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려면 내국인 대우 원칙만 확실히 보장해주면 된다. 정책과 제도는 단순명료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한 보수언론은 “결혼(FTA)하자면서 손(ISD)도 안 잡겠다는 것은 웃기는 논리”라며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불가피성을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집안 환경이 변해 부인이 굶더라도 남편은 결혼할 때 기대했던 대로 혼자만 배불리 먹겠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정당하고 공정한 대우만 보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이상은 다른 가족에 대한 불평등 대우다.
넷째, 선비준-후재협상론을 보자. 일단 한-미 에프티에이를 비준하고 나면 재협상에서 우리의 교섭력이 급격히 약해진다. 미국은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협상과 교섭의 경험이 많은 이른바 성공한 기업경영자 아닌가. 어찌 이런 오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정 재협상할 생각이 있다면 선비준을 하면 안 된다. 재협상이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면 모를까.
한-미 에프티에이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통상전문가들의 말만 듣고 해서는 안 된다. 무지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일부 통상전문가들은 단지 오늘 좀더 잘살게 되면 내일도 더 잘살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근거없는 막연한 기대감에 불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에프티에이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큰 실수를 한 것도 통상전문가들의 조언만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유무역협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하려면 정확히 알고서 하자는 거다. 우리 경제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조항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거다.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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