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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서울을 마을로 / 이원재

등록 2011-10-26 18:46수정 2013-05-16 16:38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서울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서울이라는 마을은 더 행복해졌을까?
서울에는 새로운 경제가 필요하다
동네에 청원서가 돌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우리 구에 있는 대학교에 대형마트가 입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가 막혔다. 우리 집에서 그 대학교까지 가려면, 교통이 조금이라도 막힐라치면 30분이 넘게 걸린다. 동네엔 걸어서 갈 수 있는 슈퍼마켓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심지어 자동차로 15분여만 가면, 다른 구이긴 하지만 이미 대형마트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주민들이 그 청원서에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브랜드를 가진 대형마트가 우리 구에 입점하면 어쩐지 자랑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문득 나는, 순창고추장을 떠올렸다. 순창고추장이 본격적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이다. 순창식품(현재의 ㈜대상)은 그해 전라북도 순창에 첫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담가 먹던 고추장이 어엿한 상품으로 시장에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임금님께 진상하는 고추장을 만든다는 순창에 공장을 짓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2010년, 순창의 공장 고추장 전체가 낸 매출은 3000억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375명이다. 1인당 8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대단한 생산성이다. 전국 평균 장류제조업 노동생산성을 따져 보면, 1인당 연간 2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나온다. 제조업 전체로 따져도 3억원가량밖에 나오지 않는다.

잠깐, 가장 적은 인력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 고생산성이라고? 훨씬 더 많은 주민을 고용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뜻일까? 1989년부터 20여년 동안, 순창고추장의 매출은 0에서 3000억원까지 늘었다. 일자리는 375개가 새로 생겼다. 그런데 순창 주민은 4만9000명에서 3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순창고추장은 순창 경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한국의 2000대 기업이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소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흥분한다. 2000대 기업의 매출액은 그 10년 동안 815조원에서 1711조원으로 늘었다. 두 배 넘게 커진 것이다. 놀라운 성장이다. 부채비율이 떨어지고 영업이익률도 안정되는 등 재무건전성도 좋아졌다. 생산성도 좋아져서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이 5억2000만원에서 10억6000만원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그 연구소가 지나친 대목이 있었다. 그 10년 동안 2000대 기업의 일자리는 156만개에서 161만개로 2.8%밖에 늘지 않았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순창은 서울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한국 대표기업의 본부는 대부분 서울에 있다. 그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의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궁금하다. 서울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서울이라는 마을은 더 행복해지고 있을까?

내 고향은 서울이다. 고향에 글로벌 기업이 여럿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는, 내 고향이 몇분 걸어가면 안전한 먹거리를 살 수 있고, 주말이면 동네 주민들과 함께 취미 모임과 자선 바자회를 열 수 있고, 아이들이 방과후에 함께 어울려 놀 공원이 있고, 아이와 함께 걸어가서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있는 공동체라면 더욱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런 도시가 된다면 대형마트 유치를 위해 청원서를 돌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서울시장에게 묻는다. 서울에는 새로운 경제가 필요하다. 어떻게 서울을 나의 자랑스러운 고향으로 만들어줄 것인가? 서울을 어떻게 마을로 만들어줄 것인가?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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