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내일모레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날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 소외되고 핍박받고 생활이 피폐해진 사람들은 정권교체를 갈망하고 있고, 이 정부 들어 혜택을 누린 사람들은 얻은 것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현 정권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혼전 양상인지 흑색선전에 색깔론이 더욱 심해지면서 선거는 점점 더 혼탁해지고 있다.
투표율, 특히 연령대별 투표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번에도 결정적 변수가 될 모양이다. 지난 선거를 보면, 선거인 수로는 20~30대가 50~60대보다 훨씬 많은데도(43.1% 대 34.3%) 투표인 수에서는 오히려 20~30대보다 50~60대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9.9% 대 46.7%). 그 이유는 20~30대의 투표율이 50~60대 투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이상 18대 총선 기준). 즉, 선거인 1인을 기준으로 하면 50~60대가 20~30대에 비해 2배가 넘는 권리를 행사하면서 선거 결과를 결정지은 셈이다.
투표를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각자가 선택할 문제다. 경제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든 그 행위에 수반하는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서 결정한다. 투표를 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평가하고 투표소에 가는 시간과 노력 등)과 편익(선거 결과로 사회가 바뀌어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비교해서 투표 여부를 결정한다. 예들 들어 투표를 해봐야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얻는 편익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투표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20~30대는 투표 비용이 편익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 반면, 50~60대는 그 반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름 각자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고 필자가 그들의 선택에 대해 시비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이 나라의 20~30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투표는 연령대별 인구 비례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령대별로 원하는 경제정책 방향이 상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이 특정 연령대의 의사가 과다하게 반영되면 국가 경제정책의 방향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경제정책은 정치로 결정되고 정치는 투표(즉, 정치 시장)에서 나타나는 투표자(즉, 정치 수요자)들의 의사(즉, 정치 구매행위)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의 정치 구매행위가 지금보다 많아져야 모든 세대의 의사가 균형있게 반영된 국가 경제정책이 공급될 것이다.
둘째,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은 평생 동안 떨쳐버릴 수 없는 경제적 비애를 안고 있는 불운한 세대다(필자의 6월20일치 칼럼 ‘이 나라 젊은이들의 비애’ 참조). 학생 때는 등록금 걱정, 졸업하고는 취직 걱정, 취직해도 비정규직 문제와 차별적 임금 대우 걱정, 장년이 되어서는 노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부양 부담, 노년이 되어서는 국민연금 고갈로 인한 은퇴 후 생활불안 문제, 이것이 지금 젊은이들이 겪을 암울한 한평생이다. 젊은이들이여, 이 문제를 기성세대가 풀어주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필자를 위시해서 기성세대의 어느 누구도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세금을 더 내고 싶어하는 기성세대도 많지 않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끌고 갈 젊은이들의 의사도 국가 경제정책 방향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정치 시장에서 구매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의사가 반영된 경제정책이 공급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대들의 부모가 서울 강남에 최소한 30~40평대 아파트라도 사줄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젊은이들이여 투표하라. 국민의 73%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한국 사회를 그대들이 바로잡고 싶다면 투표하라. 그대들이 한평생을 살아야 할 삶이다.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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