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였는지 강에서였는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아니,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거기에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
시인도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시대가 할퀸 상처를 견디지 못해 떠났던 시인은 어느 날 깊은 상처에 피어난 온갖 꽃과 함께 홀연히 돌아왔다. 이후 시인은 상처를 겁내지 않았다. 그 섬세한 감성으로 이웃의 절망과 오열을 감싸 안았다. 거기서 시인은 이웃의 상처 하나하나에 시의 씨앗을 심었고, 그것은 위로 사랑 화해 희망이라는 이름의 꽃으로 피었다.
미당은 저를 키운 것이 8할은 바람이라고 자처했지만, 시인을 키운 건 10할이 피바람이었다. 사람은 피에 굶주렸고, 산하는 무고한 주검으로 미쳤던 시대의 피바람이었다. 청소년 시절, 6·25 전쟁이 나던 해 9월 말, 마을 뒷산 방공호에 묻힌 시체 파내는 부역에 동원됐다. 그 주검들은 남쪽 정부에 의해 학살된 보도연맹 회원, 북쪽에 의해 처형당한 우익과 지주 친일 행위자들, 다시 남쪽이 처단한 인민위원회 부역자였다. 전쟁이 나기 전 모두가 살을 부대끼며 살던 일가친척이고, 이웃들이었다. 진저리나는 피비린내와 주검의 악취, 거기에 뒤엉킨 언젠가 살가웠던 기억들 속에서 그 역시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고, 학업을 중단하고 방황했으며, 두어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결국 헤매던 끝에 머리 깎고 출가했다. 인연의 모진 사슬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꿈꿨지만, 참극의 상처가 아물 리 없었다. 그저 깊어지고 넓어질 뿐이었다. 다행히 그건 보편적 고통으로 확장되고, 시적 언어로 익어갔다.
결국 다시 사람 속으로 돌아왔다. 비극은 계속되고 있었다. 6·25의 참극은 이승만, 박정희의 반공독재와 무자비한 인권유린으로 부활해 있었다. 시인은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자신을 난도질했던 그 폭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상상력은 활이었고, 시는 화살이었다. “… 이윽고 과녁이 피를 뿜으며 쓰러질 때”(‘활’)까지 시인은 온몸으로 날아갔다. 권력은 그를 투옥하고,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워 죽음 직전까지 내몰기도 했지만, 화살을 꺾지는 못했다. 하지만 억압·폭력과의 대결은 공동체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행진의 한 도정일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다”.(‘서시’) <만인보>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고통스런 역사를 되새김질하고, 그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끄집어냈다고 말했다. 그 <만인보>는,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가 사형당하기 직전까지 머물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7호 특별감방에서 탄생했다. 일찍이 그의 시가 세계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의 정수리에서 길어낸 이런 인간애의 보편성 탓이었다. 그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시를 쓰고 노래했다.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울부짖고 또 절규했다.
그런 시인에게 10월의 초입은 잔인한 시간이다. 도박사들의 내기 대상이 되고, 그들이 정한 확률에 따라 줄 세워지고, 언론은 중계방송하듯이 동정을 전한다. 그러다가 돌연 외면의 깊은 침묵에 던져둔다! 벌써 8년째다. 물론 시인이 기대하고 좌절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여읜 터였다. 그의 시 자체가 월계관인데, 거기에 무엇을 더 얹으려 할까.
새들도 날아가고 풀벌레 울지 않고, 바람도 멈춘 나무는 외롭다. 시인도 그처럼 외롭다.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것이야 흩어지는 바람처럼 무상하지만, 시인의 가슴은 시리다. 이제 시인이 위로를 받을 차례다. 감성이 코스모스처럼 나풀대는 ‘가을 편지’에서 그가 위로하듯이.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우리에게 온 시인은 축복이었다. 시대의 상처에 시의 씨앗을 뿌려 꽃을 피운 시인, 그에게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외로운 시인은 아름답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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