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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어른대는 대공황의 그림자

등록 2011-09-26 19:14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2008년의 금융위기를 두고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자본주의 복원을 위한 해법도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전세계 국가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양적 완화’(돈풀기)를 통한 위기 해소에 급급했다. 1년여 만에 세계 금융시장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사뭇 비장했던 위기의식은 어느덧 사라졌다. 겉으론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듯처럼 비쳤다.

금융위기 극복이 미봉책이었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재정을 쏟아부었던 게 재정위기라는 부메랑이 돼 뒤통수를 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소방수 구실을 했던 각국 정부는 이제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그 자신이 위기의 진원지가 돼버렸다.

더 큰 문제는 그 와중에 ‘자본주의의 위기’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돈을 풀어 발등의 불을 끄는 것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을 함께 해결해야 했는데 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끝없는 탐욕, 극단으로 치닫는 부의 양극화, 높아지는 실업률과 물가 불안 등 자본주의 위기 징후는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했다.

이번 위기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긴 힘들다.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부터 1~2년 정도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하지만 지금으로선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유럽 재정위기를 해소해줄 돈줄이 보이지 않는다. 제 코가 석 자인 미국은 제쳐 놓더라도 중국이나 브라질 등 신흥대국도 발 담그길 주저한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돼 그리스 등 몇몇 나라의 국가 부도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국제공조를 이끌 세계 각국의 정치적 지도력이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취약하다는 것도 악재다. 각국 정부는 잇단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정치적 신뢰마저 잃었다. 벼랑으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의 폭력적 저항이 시작됐는데 이런 저항도 점점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 ‘버핏세 논란’ 등 자본주의 위기를 치유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이긴 하지만 정쟁거리로 전락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위기가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하고 자칫 공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이유들이다.

우리 경제가 받게 될 충격도 더 크고 깊을 것이다. 당국자들은 여전히 ‘펀더멘털 타령’을 하고 있지만 세계경제가 무너지면 일국의 펀더멘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 유럽계 자금의 탈출 러시가 일어나면 우리 금융시장은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부도 위험지수는 ‘위험국가’로 분류된 프랑스보다 높아졌다. 세계 금융시장 붕괴에 이어 실물경제까지 침체에 빠지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비빌 언덕마저 잃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다. 특히 환율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벌써 달러당 1200원 선에 육박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돌파구로 수출이라도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 환율 상승을 용인하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긍정적 효과보다 물가 불안, 주가 폭락 등 부작용이 훨씬 크다. ‘물가만 보고 금리를 올릴 수는 없다’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인식도 문제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길 기대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해소할 작업도 당장 착수해야 한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한 규제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부의 양극화를 완화할 부자 감세 철회, 더 나아가 부자 증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성장 확대가 아닌 공정 분배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저소득 계층의 소비 여력을 키워줄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다음주부터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재가동할 모양이다. 당연한 조처지만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지하 벙커’에 둘러앉아 모양새나 내면서 국제공조에 기댈 단계는 지났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최악의 사태에 대응한다는 자세로 임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엄중한 상황이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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