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안철수 교수 지지율’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병에 걸리셨어요?”라고 톡 쏘아붙인 일이 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달되어 온 ‘우아한 분위기’와는 딴판의 이 ‘낯선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했을 듯하다. 이 발언의 독성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을까, 바로 다음날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한 건데, 표현이 부적절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병에 걸리셨어요?”라는 이 질문은 대상만 제대로 짚었다면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이 될 뻔했다. 그 질문을 ‘안철수 지지율’을 묻는 기자에게 하지 않고, 지금 말기 증세의 깊은 ‘부패의 병’ ‘무능의 병’ ‘오만의 병’에 걸려 있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인사들에게 했더라면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무릎을 쳤을 것이다.
부패의 깊은 병은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 핵심 인사들의 부패 비리 사건에서 보듯 치유불능의 말기에 이른 것 같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핵심 인사들의 권력과 돈에 대한 탐욕과 집착은 참으로 대단하다. 수구세력들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시기를 언필칭 ‘잃어버린 10년’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 핵심부의 부패와 비리 행태를 보면, ‘잃어버린 10년’은 기실 ‘권력과 돈을 움켜쥘 기회를 잃어버린 10년’이었고, 그래서 권력과 돈에 큰 허기를 느낀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부패의 깊은 병이 어디 지금 터지고 있는 곳뿐일까. 23조원에 달하는 4대강 토목공사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지 궁금해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터다.
‘무능의 병’도 깊다. 최근의 정전대란에서 그 생생한 실체를 보게 된다. 아무런 사전예고나 대책도 없이 그렇게 큰일을 저지를 정도로 무모하고, 무능했다. 그런데 한국전력과 관련 회사들의 인사 내용을 보니, 답이 나왔다. 한국전력 사장 내정자가 ‘티케이(대구·경북)-고려대-현대건설’ 출신인 것을 비롯하여 전력 관련 12개사 기관장과 감사 자리를 엠비의 낙하산 사람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인사로 제대로 된 전력정책과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가운데 엠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참 ‘오만’하다. 이번 정전대란 때 주무 장관이면서도 서면으로 짤막하게 대국민 사과를 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모습에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그는 지난 1월 인사청문회 때도, 최근 정전대란 이후 있었던 국정감사장에서도 ‘버럭’ 언성을 높이며 도발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눈에는 국민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도, 그냥 우스운 모양이다.
나라꼴은 이렇게 말이 아닌데,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해묵은 이념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이후 한나라당 공식 입장이 “강남좌파의 정치쇼”였다. 하도 답답해서일까, 원희룡 최고위원이 한마디 했다. “참회록을 내놔도 시원치 않은데 유효기간이 다 지난 해묵은 이념 타령을 내세워 신경질 내는 보수의 모습에서 더 큰 위기를 본다”고. 그렇게 탓했지만, 조용환 변호사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문제나 아동 급식 등의 문제를 보는 한나라당을 보면 낡아서 너덜너덜한, 그래서 새 시대와는 거리가 먼 이념의 중병을 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구세력의 집권에 최대 위기를 불러오는 부패와 무능의 병은 깊어만 가고, 최중경 장관 등의 오만으로 표가 후두둑 떨어져도 제 길을 찾지 못한다.
이렇게 나라가 온통 깊은 병에 걸려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먼 나라에서 온 관전자 같다. ‘안철수 돌풍’이 불자 “정치권에 올 것이 온 것”이라고 ‘관전평’을 했고, 정전대란이 일어나자 화를 벌컥 내면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런 일을 자초한 사람들을 책임자와 감독관으로 앉혀 놓은 사람이 누군데,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지 참으로 딱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나라 운영의 최고 책임자라기보다는 해설자, 관전평자의 모습이다. 자신은 이런 일들에 별 책임이 없고, 그래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논평을 하고, 화를 내면 되는, 그런 입장이다.
온 나라가 참으로 깊은 병에 걸려 있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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