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장 폴 마라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신의 신문 <인민의 벗>을 통해 혁명의 적들을 공격하며 급진적인 정치적 견해를 펼쳐 혁명의 과격한 단계를 이끈 인물이다. 그는 당통,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혁명 당시 온건파인 지롱드파의 몰락에 기여했고, 그 이유로 살해되었다. 그를 죽인 사람은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지롱드파 처녀였다. 1793년 7월13일 마라는 자신 숙소에서 살해되었다. 피부병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보내던 욕조에서 젊은 여인의 칼에 찔린 것이다. 코르데는 피해자를 찌른 뒤 도피할 생각도 없이 순순히 경찰에 체포되었다.
유명한 정치가가 무명의 여성에 의해 살해된 이 극적인 사건은 당시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예술적 감흥으로 구체화된 경우가 많았고, 대표적인 것이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이다. 그밖에도 많은 소설과 희곡과 영화가 그의 삶과 죽음을 묘사한다. 그 작품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인민의 벗’이었던 마라의 영웅적 행적을 기리는 것이다.
반면 범인 코르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스물다섯살의 코르데는 범행 전에 이미 성명서를 작성하여 “완전한 헌신을 통해 가장 미미한 손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기 원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뜻으로 거사했다고 밝혔음에도 당시 산악파, 사법부, 경찰, 언론 모두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나이의 여자가 그런 정치적 행동을 했을 리 없다는 선입견이 작용했다. 그들은 누군가 선동한 남성이 배후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공유했다.
그 배후가 지롱드파라는 확신 속에 그들에 대한 탄압과 혁명의 과격화가 가속되었다. 코르데는 범행 나흘 만에 처형되었다. 배후가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 그들은 시신에서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부검하여 처녀성을 검사했다. 검시인은 그가 순결한 육체로 사망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마라보다 코르데의 죽음이 더 극적으로 보인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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