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덴마크 귀족 가문 출신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만큼 삶의 첫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일화로 가득 차 있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는 두살 때가 “학자가 되려는 첫 단계”였다고 기억하는데, 그때 삼촌이 예고 없이 그를 납치해갔다. 부모는 그를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본디 자식이 없는 삼촌에게 부모가 아이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자 삼촌이 직접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코펜하겐 대학의 법학도였던 그는 1560년 8월21일 예견된 일식이 실지로 일어나자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당시에는 결투를 벌이다가 코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여생을 그는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든 모조 코를 풀로 붙이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의학과 연금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모와 삼촌 모두 명문 출신으로 큰 부자였고, 유산을 물려받은 그도 1580년대에는 덴마크 국가 재산의 1%를 소유했을 정도였다. 그의 성 안에는 길들인 큰뿔사슴이 있었다. 그 짐승은 저녁 반주로 마신 맥주가 과해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는 1600년 보헤미아 왕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의 왕실 천문학자가 되었다. 이듬해에 그는 연회에 참석했다가 방광염에 걸려 열흘 만에 사망했다. 연회석상에서 소변을 보러 가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참고 집까지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죽기 전날 밤 그는 비몽사몽간에 자신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고 외쳤다 한다.
그의 큰 업적은 천동설과 지동설을 절충시킨 것이었다. 해가 지구의 둘레를 도는데, 다른 모든 행성은 해의 둘레를 돈다. 지금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이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성직자들은 그의 이론을 제일 좋아했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수용하면서 종교적 신념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관찰한 기록은 대단히 정확해서 조수였던 케플러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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