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그의 이력에서 보듯 비교적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 그의 공적인 삶은 인권과 반부패라는 두 화두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20여년 전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생활을 시작한 뒤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등을 거쳐 교육감이 되기 직전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과의 싸움은 그의 후반부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에 정면으로 맞섰다. 2000년 6월29일 고발장을 내면서 시작된 삼성과의 싸움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거쳐 2009년 ‘사실상 실패’로 마무리됐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무죄를 선고한 대법 판결이 나온 뒤 판결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지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랬던 곽 교육감이 지난해 ‘후보 단일화’ 때 후보를 사퇴한 박명기 교수에게 올 들어 2억원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삶의 궤적을 지켜본 필자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대가에 관한 어떤 약속도 없었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 박 교수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선의’로 2억원을 지원했다는 말도 믿고 싶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개인적 차원의 평가일 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공인(公人)으로서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현재도 서울시 ‘진보 교육감’이라는 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판단과 처신은 철저히 진보 교육감이라는 공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또한 그런 잣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공인의 삶은 일견 화려해 보인다. 극히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과 명예를 향유하고, 이를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해 준다. 하지만 이에 따른 의무와 책임도 막중하다. 때로는 개인적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공인이란 결국 삶에서 사적 영역을 줄인 대신 공적 영역을 넓힌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도덕성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진보 인사들에게만 유난히 도덕성을 강조하는 ‘도덕 프레임’에 빠져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도덕성이 결여된 공인은 보수나 진보 모두 사이비일 뿐이다.
곽 교육감은 이번 ‘2억원 지원’에 도덕적으로 아무런 부끄럼이 없는지 겸허히 되돌아봐야 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도덕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사인(私人)에게는 도덕적이지만 공인에겐 부도덕한 행위도 적지 않다.
공인은 또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가치를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곽 교육감은 공교육 강화와 무상급식 확대 등 소중한 가치들을 실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게 우리 사회가 이런 가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곽 교육감의 거취 자체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곽 교육감에게 붙여진 ‘진보 교육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지난해 진보진영의 추대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자신의 처신이 진보진영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곽 교육감의 사퇴 여부를 두고 진보진영이 갈라져 있다. 곽 교육감이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고 있는 셈이다. 곽 교육감은 2억원의 대가성 여부에 대해 끝까지 사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예상되는 검찰의 ‘먼지털기 수사’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법학 교수로서의 그의 법률적 식견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퇴 여부는 철저히 공인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 이전의 문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흔쾌히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공인이다. 그래야 그의 공적인 삶뿐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공적 가치가 살아남는다. 공인은 그런 공적 가치를 실현하라고 사회가 만들어준 화려한 감투를 잠시 빌려 쓴 사람일 뿐이다. 공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냉혹하다. 아프지만 견뎌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곽 교육감에게 붙여진 ‘진보 교육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지난해 진보진영의 추대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자신의 처신이 진보진영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곽 교육감의 사퇴 여부를 두고 진보진영이 갈라져 있다. 곽 교육감이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고 있는 셈이다. 곽 교육감은 2억원의 대가성 여부에 대해 끝까지 사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예상되는 검찰의 ‘먼지털기 수사’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법학 교수로서의 그의 법률적 식견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퇴 여부는 철저히 공인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 이전의 문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흔쾌히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공인이다. 그래야 그의 공적인 삶뿐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공적 가치가 살아남는다. 공인은 그런 공적 가치를 실현하라고 사회가 만들어준 화려한 감투를 잠시 빌려 쓴 사람일 뿐이다. 공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냉혹하다. 아프지만 견뎌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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