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혁명의 한 근거인 귀납법을 다진 사람이다. 귀납법이란 이론적 틀을 먼저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사물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이다. 경험론과 다를 바 없는 이것은 전통적인 삼단논법과 반대된다.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었다’는 것이 연역법의 예라면, ‘소크라테스도 죽었다. 칸트도 죽었다. 니체도 죽었다. 고로 인간은 죽는다’라는 논증은 귀납법이다.
예만 나열할 뿐 새로운 지식을 더해주지 못하는 연역법에 비해 귀납법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준다. 문제는 귀납법을 통해 만들어진 지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버트런드 러셀이 적절하게 예를 들었듯, 매일 같은 시간에 주는 모이에 길들여진 칠면조들이 어느 날 모이를 먹으러 왔는데 그다음날이 추수감사절이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귀납법이 갖는 오류의 한 예다. 그런 오류를 최소화시키려고 베이컨은 보조 논리를 여럿 만들었다.
베이컨이 귀납법을 새로 확립한 이유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우상을 타파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종족’, ‘동굴’, ‘시장’, ‘극장’이라는 네 가지 우상인데, 그 우상은 인간의 본성이 원체 나약하여 갖게 되는 헛된 믿음을 말한다. 특히 시장의 우상은 언어에 의해 현혹되는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한다.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어서 거기에 ‘시장의 우상’이라 이름 붙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을 만들어내서 계속 그 말을 반복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정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시장의 우상을 잘 이용한다. 사실과 다른 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곤,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입시킨다.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등의 말을 만들어내는 이 정부는 ‘시장의 우상’의 달인이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를 믿어서 그럴까?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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